■ (15) 경희궁지
경복궁 중건하면서 떼내고
경성中 세우며 마구 헐리고
흥화문은 히로부미 사당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여인
재개발에 떠밀려난 할머니…
‘비밀의 화원’ 찾아 걸으면서
모질었던 세월의 기억떠올라
최근 몇 년 사이 몰라보게 바뀐 신문로 주택가로 접어들자마자 상가로 개조된 주택이 너무 많아 놀란다. 1층에 유명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커피집이 있는 일조각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평소엔 어지러워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경희궁의 기조를 두꺼운 유리판 아래로 내려다본다. 눈으로 보면 볼수록 서울시가 궁궐의 기본 골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에다가 일반인이 건물을 짓도록 허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경희궁에서 궁궐의 위용을 그다지 느낄 수 없는 것은 수영장까지 있던 일제의 경성중이 들어서면서(1910년) 헐렸던 궁궐의 면적이 서울시의 무분별한 건축 허가로 인해 절반 정도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궁궐이 있었던 곳엔 구세군빌딩과 성곡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교육청, 일조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경희궁이 비록 이궁(정치적 상황이나 화재 등에 의해 임금이 거처를 옮기는 곳)이었으나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때 경희궁의 전각을 가져다 쓰도록 했던 점 등도 궁궐의 위용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을 터이다. 원래는 구세군회관 건물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던 흥화문도 일제가 떼어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위한 사당의 문(박문사의 정문)으로 쓰던 것을 이전해 복원했으니 경희궁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내겐 날마다 경희궁을 걸었던 꽤 긴 세월이 있다. 18년 가까이 살았던 개와 함께였다. 개와 속도를 맞춰 걷는 걸음은 뜻밖의 것을 보게 하고 뜻밖의 것을 놓치게 했지만, 날마다 가다 보니 풀 한 포기의 변화까지 식별할 정도가 됐다. 수십 종의 매화가 꽃이 피기도 전에 전지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일, 넓게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던 모란 군락지, 그 모란 군락지가 반으로 줄어들었던 날의 애석한 감정에 대한 기억….
부와 나이보다 상대적인 것이 있을까. 자신이 가난하다고 외치는 부자들과 자신이 늙었다며 풀죽은 젊은이들. 나 또한 극빈자와 노인들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경희궁 뒷마당을 걸을 때, 한 젊은이의 인사를 받는다. 모르는 사람이 한갓진 장소에 건네는 인사 같지가 않다. 햇볕이 쏟아지는 벤치에 앉아 있는 그는 따뜻한 날씨에 어울리는 스카프를 둘렀는데, 전체적으로 무척 세련된 옷차림이다. 옷차림만큼이나 내면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그는 퇴근길에 걷고 있는 나를 자주 본다고 한다. 왠지 손해 본 느낌이 들어 나는 짧게나마 그를 집중해서 본다. 조용한 말투와 잔잔한 눈빛의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 작은 차이에는 왠지 외로움이 틀어 앉을 것만 같아 나는 사라지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 지점에서 열 걸음 거리에 우리 동네가 있다. 왼편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걸으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도 있다. 그 집과 마주 보던 집들은 경희궁을 두른 담장에다 쪽문을 내어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경희궁 뒤뜰로 드나들곤 했다. 한 늙은 남자의 집 쪽문으로 젊은 여자가 드나드는 것을 보고 기함한 날들도 있는데, 불행하게 죽은 그의 부인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외자의 이름을 가졌던 그의 부인은 수시로 우리 집에 들이닥쳤고, 자리를 권하기도 전에 앉아 펑펑 울고 가곤 했다. 아들이 한강에서 익사체로 떠올랐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았던 그녀 역시 의문사를 당했으니 평범한 주택가에도 정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삶이 있는 셈이다.
내 발걸음은 어느새 야트막한 산자락 어딘가에 있는 ‘비밀의 화원’을 찾아 걷고 있다. 집 안에서 경희궁의 울창한 숲(비밀의 화원)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절묘한 집으로 나를 초대했던 이는 혼자 살던 온화한 할머니였다. 그분은 재개발로 땅값이 치솟았을 때 아들에게 그 집을 양도했고, 곧바로 양로원으로 보내졌다. 내게 그 소식은 언짢았다.
그 감정마저 흐릿해졌을 때 그분이 혼자 그 골목에 나타났다. 창백한 혈색의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고, 치매가 왔다고 들었던 할머니의 정신은 말짱해 나를 알아봤다. 할머니는 앉은걸음으로 자신이 살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처럼 강렬한 모습으로 다녀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꼭 이맘때마다 “꽃나무는 꽃을 보고 난 뒤 전지를 해야 한다!”며 뭉툭해진 꽃나무를 보며 혼자 분개했던 길에서 놀라 걸음을 멈춘다. 왜 궁궐에서는 기층민의 삶이, 빈민가에서는 궁궐 같은 삶이 대비되며 사고력이 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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