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2008년 11월 11일,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인기 TV 프로그램 ‘제이 레노의 투나이트 쇼’에 출연했다. 매케인이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뒤 꼭 일주일 만이었다. 짓궂은 제이 레노는 대다수 미 언론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던 것을 지목하며 “불만이 없느냐”고 언론에 대한 비난을 부추겼다. 그러나 매케인은 “미국인은 비통한 패배자(sore loser)를 원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비통한 패배자는 승부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래서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반대말은 품위 있는 패배자(graceful loser)다. 승자 가운데, 이긴 것을 오만한 태도로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을 비통한 승자(sore winner)라고 부른다.

매케인은 “경쟁은 치열했지만, 상대에게 악감정을 품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지지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역시 베트남전에 참전해 포로가 됐다가, 석방된 뒤 정치에 헌신한 매케인을 진정한 애국자로 칭송했다. 둘 다 품위 있는 승자와 패자였다.

한국 정치에도 품위 있는 패자가 많았는데, 상당수는 결국 승자가 됐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신민당에서 40대 기수론의 기치를 먼저 들었던 김영삼은 당내 경선에서 김대중에게 역전패를 당했지만, 깨끗이 인정하고 김대중을 도왔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이 됐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막판에 노무현 후보 쪽으로 지지세가 몰리자 다른 후보들이 사퇴했는데, 정동영 후보는 끝까지 남아 ‘경선 도우미’를 자처했다. 정동영도 2007년에 야당 후보가 됐다. 그러나 선두를 달리다 권력 개입 ‘음모론’을 제기하며 경선을 포기한 이인제는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는 당원 투표에서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져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깨끗이 승복하고 이명박 후보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설로 정치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미래통합당 지지자 가운데 일부가 4·15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표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말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제시하고 수사를 의뢰하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만 접고 보수 정당 재건에 힘을 모으는 것이 낫다. 비통한 패배자는 얻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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