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 보도로 알려진 군(軍)의 기강 해이 실태는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한다. 군의 핵심 두뇌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 퇴직 연구원 20여 명의 군 기밀 대량 유출 사건, 육군 대령의 지휘통제실 군단장회의 도청 사건, 한 만취 장교(대위)가 나체로 노숙한 사건, 남성 부사관 4명이 남성 장교(중위)를 집단 성추행 한 사건, 전투기 조종사들이 비상대기실에서 수차례 술판을 벌인 사건, 육군 상병이 여군 중대장(대위)을 야전삽으로 폭행한 사건 등의 보도를 대하는 국민의 심정은 어떨지 두렵기만 하다.
한·미 군사동맹의 강력한 파트너이고 현대전 수행 역량을 자랑해온 군의 막강한 모습과 위상은 모두 어디 가고 지금은 무너지고 있는 기강과 무기력, 심지어 패륜의 작태마저 보이는 지경이 됐는지….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이런 심각한 군 기강 해이에 관련된 문제들은 어떤 제도적 개선이나 복무규정 강화 또는 정신교육만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다. 문제의 뿌리, 즉 근본 원인을 캐봐야 한다. 그 뿌리는 국가 및 군통수기구의 최고 수준에서부터 찾아봐야 할 것이다.
장병의 복지 수준이나 병영생활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민주화한다고 해서 병영생활 질서가 확립되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지휘체제와 군 기강이 준엄하게 세워진다고 할 수가 없다. 최근의 언론 보도가 보여주는 군의 현실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국가통수기관의 국가안보 목표와 국방 의지가 확고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견고하게 뒷받침될 때 군의 기강과 정신전력 및 전투 의지도 확립될 수 있다.
군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대내외적 안보 및 국방 환경은 6·25전쟁 이후 최악으로 생각된다. 우선, 국가 및 군통수기구의 국방안보 목표가 흐릿하다는 게 문제다. 핵으로 무장된 북한군의 위협에 대한 정부와 군의 확고한 대응 태세가 분명하지 않다. 남북관계 개선에만 매달려 있을 뿐, 군 자체의 자주적 대응책이나 한·미 연합 대응을 보장받기 위한 동맹 강화 정책도, 유사시 한·미·일 3국 간의 안보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대(對)미·일 외교정책도 방향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군 장병들은 북한군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적(主敵)으로 간주하고 항시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하기보다 편안한 병영생활에 길들어 가고, 정부 당국과 정치권은 이들에게 군 복무 단축, 봉급 인상 등 갖가지 당근을 고안해 내는 일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한편, 군의 고위 지휘부는 어떠한가.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위주의 대북정책과 이로 인한 군의 대북 경계 및 방어태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9·19 남북 군사합의에 군사 당국으로서 당연히 견지해야 할 견해와 입장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의 친북·반일, 친중·반미 지향으로 비치는 외교안보 정책에 묵묵히 따라가기만 한다. 국민은 식상하고 군 스스로도 양식(良識) 있는 장병이라면 계급과 지위의 상하를 불문하고 군 고위 지휘부의 그런 모습에 실망할 게 분명하다. 군의 위상과 권위가 군 안팎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정부의 국방안보관이 흐릿하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적이 흐릿해지고, 장병의 주적 개념이 흐릿해지면 경계·방어태세가 이완될 수밖에 없으며, 유사시 전쟁 발발에 확고히 대비할 수 있는 동맹 등 국제안보 협력체제가 와해되면 군의 기강과 정신전력과 임전 태세는 붕괴된다. 국가 및 군통수기관이 유의해야 할 일이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