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경제부장

세계석학 “신속 과감” 충고하고
도덕적 해이 우려에 선 긋는데
文정부는 기부 유도 超法 발상

脫코로나 대책 속도·방향 엉망
각종 지원책 현장선 그림의 떡
美·獨·日 양적완화 속전속결


코로나19 충격으로 글로벌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빠지면서 전 세계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산소호흡기로 버티는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방향성이다. 전문가들의 주문도 ‘신속하게 최대한 지원하라’이다. 리처드 볼드윈 스위스 제네바대 국제경제대학원 교수는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코로나 경제 전쟁’에서 “전면전이 필요한 시기”라고 규정했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도 “적자재정으로 대규모 공적 투자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심각한 국가부채 상황 개선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미국의 속도전은 빨랐다. 재난지원금은 3월 19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지 8일 만에 상하원을 통과했다. 한 달도 채 안 돼 4월 15일부터 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연소득 7만5000달러 이하 성인에게 1인당 1200달러씩이다. 규모도 세계 최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6일 제출한 긴급예산법에 대해 의회는 3배 이상 증액해 통과시켰다. 3월 2조2000억 달러(약 2684조 원) 규모의 3차 경기부양책, 최소 2조 달러(약 2440조 원) 규모의 4차 부양책까지 합치면 총 6000조 원이 투입된다.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4차 부양책에 대해 “오직 일자리와 인프라 재건을 위해 쓸 매우 크고 대담한” 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일본 국회도 현금지급 방안이 담긴 예산안을 휴일에도 심의를 진행해 나흘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무제한 돈을 푸는 양적 완화에도 동참했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차별적인 재정 살포, 전례 없는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통화 정책은 특히 독일의 통 큰 행보가 주목받았다.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4.1%에 달할 정도다. 처리속도 역시 어느 나라보다 신속했다. 부양책은 3월 25일 하원 처리 이틀 만에 상원 통과까지 끝냈다.

문재인 정부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곳곳에서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다. 2월부터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3월 중순 국가 차원에서 논의가 본격화한 긴급재난지원금 진행 과정은 ‘긴급’이라는 수식어가 창피할 정도다. 빨라야 5월 13일 첫 지급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어처구니없는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총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50%, 70%, 100% 지급안을 오락가락하더니 급기야 ‘관제 기부’ 논란에 휩싸였다.

기획재정부를 향해 ‘정치하지 말라’고 몰아붙였던 더불어민주당이 절충안으로 내놓은 묘수란 것이 뜬금없는 시민단체식 국가 운영이다. 세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상천외 그 자체다. 조세법률주의 정신은 무시됐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편을 가르는 의도는 유쾌하지 않다. 대기업 참여를 끌어내려는 심리적 압박 성격도 있다. 기부 참여가 어느 정도 될지도 알 수 없다. 국가 예산을 국민의 자발적 헌납에 의지해야 하는 주먹구구식은 국정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확보한 돈의 집행 속도도 더디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금융안정 대책, 위기에 내몰린 대기업 지원 등에 240조 원을 푼다는데 관료의 레드테이프 때문에,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현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피해를 입증하라, 대출을 먼저 갚아라, 도덕적 해이가 있다면 지원도 거둔다 등이다. 올해 국가채무는 850조 원에 육박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예정인데, 별 효과도 내지 못하면 최악이다. 찰스 위폴로즈 제네바대 교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책 대응 자체가 탈선하는 일이 더 크게 우려할 만한 잘못”이라고 경고했다. 도산 위기의 기업을 구제할 때 ‘도덕적 해이’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하다. 미국과 독일은 선(先)지급 후(後)확인 방식으로 속도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정부는 보이지 않는 적과 미증유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문 대통령이 직접 이끌었던 비상경제회의는 격을 낮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넘겼다. 말 그대로 경제 위기는 이제 시작인데 대통령은 뒤로 빠졌다. 홍 부총리가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이라며 스스로에게 발동한 경보 사이렌의 의미가 심상치 않다. 이런 식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경제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설계하는 작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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