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철지난 바닷가’
눈부신 5월에 임이 그립다면 택시를 부르는 대신 노래를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음악동네엔 주소가 따로 없으니 목적지에 ‘그리운 사람’이라고 치면 그 시절 그 사람이 나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송창식 ‘푸르른 날’ 중)
4월을 그냥 보낼 순 없어서 해질 무렵 바닷가로 나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처럼 거닐며 노래를 불렀다.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그것은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 1973년에 송창식이 발표한 ‘철 지난 바닷가’를 몇 번이고 되부르니 어느새 밤이 이슥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노래는 떠나지 않고 맴돈다. ‘아 기나긴 길 혼자 걸으며/ 무척이도 당신을 그리곤 했지/ 아 소리죽여 우는 파도와 같이/ 당신은 흐느끼며 뒤돌아봤지.’
책은 두 번 읽기 어렵지만 좋은 노래는 천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철(계절)이 그렇게 지나도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 철 지난 옷은 싫증 나서 버렸는데 ‘철 지난 바닷가’는 그래서 버리지 못했다. 어제는 한밤중에 오리지널을 꺼내 경의를 표했다. 여전히 스물일곱 살인 청년 송창식(1947년생)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깊은 밤에도 신청곡을 불러준다.
나온 지 50년 다 돼 닳아버린 음반표지엔 큰 글씨로 ‘Brand New Song(막 나온 신곡)’이라 씌어 있다. 특이하게 가수 이름도 영어(Song Chang Sik)로 표기했다. 이어서 읽으니 송송(Song Song)이다. 음반디자이너의 깊은 뜻(?)을 뒤늦게 헤아린다. 음반은 낡아도 노래는 늙지 않았다. 조심스레 바늘을 얹는다. 1면(Side A) 4번째 수록곡인 ‘철 지난 바닷가’엔 특이하게도 간주가 없다. 이별의 곡진한 감정이 중간에 끊기는 걸 원치 않아서였을까. 누군가 듣기 싫은 말을 반복하면 ‘1절만 해’라고 나무랐는데 이건 정반대다. 1절만 부르고 간주도 없이 노래를 끝내니 오히려 2절이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난 이후에 나온 송창식의 사랑 노래들을 모두 ‘철 지난 바닷가’의 2절로 간주한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주제곡은 송창식의 ‘왜 불러’(1975)다. 영화에선 경찰이 청년을 부르는 장면에서 나오지만, 사실은 노랫말 속에 노래 부르는 이유가 10글자로 나와 있다. ‘자꾸자꾸 마음 설레게 해’ 아,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송창식 ‘사랑이야’ 중) 가슴을 흔들어놓는가.
EBS에서 방송된 ‘싱어즈’의 첫 회 주인공은 송창식이었다. 부제가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였다. 노래가 오래 사랑받으려면 시대와 그대가 화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남조의 시로 만든 ‘그대 있음에’는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랑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운 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고 고백한다. 그 노래의 끝은 이러하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KBS 창사특집 ‘23.5’는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 23.5도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축복과 생명의 기적을 담은 4부작 다큐멘터리다. 송창식이 노래 부를 때 보면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질 때가 자주 있다. 다큐 ‘23.5’ 제작진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묘하게 일치한다. “기울어져서 오히려 아름답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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