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했던
부부교수의 두번째 공동 저작
“이민자들 급증에 미국인 죽어”
트럼프 주장에도 정면 반박해
실제 정착지 고용·임금 無영향
재난지원금·보편소득 지급시
일에대한 의지 실종 우려에도
87%는 “일 계속하겠다” 응답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의 화두는 ‘빈곤’이었다. ‘국제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실험적인 접근’을 높게 평가받아 이 책의 저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왼쪽 사진)·에스테르 뒤플로(오른쪽)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두 명이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공동 수상했다. 인도계 미국인 배너지와 프랑스계 미국인 뒤플로는 MIT 경제학과에서 사제로 만나 결혼한 커플이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2019)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2011, 생각연구소)에 이은 두 사람의 두 번째 공동 저작이다.
비판받아온 대로, 노벨경제학상은 한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 신자유주의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힌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시장만능주의 경제학자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받는 상으로 빛이 바랬었다. 이 책에 따른다면 ‘나쁜 경제학’의 토대를 세운 학자들이다. 40년이 지나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공공성의 쇠퇴가 부국과 빈국을 가리지 않고 지구적 위협이 되자 노벨경제학상도 이를 더는 외면하지 못해 ‘빈곤’ 연구학자도 수상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 저자들은 ‘나쁜 경제학’에 대해 ‘부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고,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시키며 국가는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이며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개념이 퍼지게 하는 데 토대가 된 경제학’이라고 설명한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불평등과 맹렬한 분노, 무기력한 패배감’을 가져왔다. 바로 우리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온 이 같은 ‘나쁜 경제학자’들이 만든 통념에 대해 저자들은 ‘실증 근거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과의 결탁과 이데올로기의 색안경을 걷어낸 ‘실험 기반의 접근법’(노벨상 수상 이유이기도 하다)과 과학에 기반한 통계와 경험, 시행착오 등을 통해 ‘통념’을 팩트체크하며 해법을 모색한다. 이른바 ‘좋은 경제학’이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가 “쏟아지는 멕시코 이민자 때문에 미국인들이 다 죽게 생겼다”며 재선 전략으로 삼고,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같은 이유를 대며 기세를 높이게 된 사안이 바로 ‘이주’의 문제다. 실제 2017년 세계 인구 중 국제 이주자 비중은 3% 정도로, 1960년대나 1990년대나 내내 비슷했다. 유럽에서 난민이 늘긴 했지만, 2018년 기준 유럽연합(EU) 인구 2500명당 한 명꼴이다. ‘물밀듯이’라는 공포의 조성엔 TV 등에 자주 나오는 경제학자들의 선동이 한몫을 했다. 1980년대 쿠바인의 이른바 ‘마리엘 보트리프트’ 이주가 12만5000명에 달해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쟁점화됐는데, 나중의 조사결과 이들의 이주가 도착 지역의 고용 및 임금 등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의 경제구조에서 이주나 이민은 너무 적은 게 문제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 대개의 나라들이 시행했고 한국에서도 논란 끝에 시행한 재난지원금이나,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도입 여부 논란이 일고 있는 보편기본소득에 대해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돈만 받아먹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크게 늘려 재정과 복지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저자들의 ‘연간 1만3000달러의 보편기본소득이 조건 없이 주어지면 당신은 일을, 혹은 구직을 그만두겠느냐?’라는 설문조사에서 87%가 아니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일을 목적의식, 소속감, 존엄성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으로 본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엄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진행될 때 복지 혜택 수혜도 포기하는 일이 빈번했다. 몇 %에게 지원금을 주니마니 하는 논란은 수혜자들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세율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커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이른바 ‘래퍼 곡선’이나 세금 인하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에 대해 역시 일부 보수 경제학자들은 지지를 보냈는데, 세율을 낮추는 것 자체로 경제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현대 경제학에서 거의 합의를 본 사실이다. 무역은 모든 나라의 국민소득을 올린다는 ‘스톨퍼-새뮤얼슨 정리’ 역시 인도에 무역자유화 조치가 도입된 1991년 전후 변화를 살펴본 결과, 무역자유화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은 곳에서 빈곤의 감소가 더 느렸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저자들의 ‘의문’은 경제성장, 불평등, 난민·이주민 및 인공지능(AI)과 일자리, 기본소득, 정부 신뢰의 추락과 사회·정치의 극단적 분열, 기후 위기 등 지구촌 모든 나라가 공히 겪는 문제들에 관한 ‘통념들’을 뒤집어 본다. ‘나쁜 경제학’은 시장이 늘 공정하고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을 주려 한다. 저자들은 이 같은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고 세계 전역에서 폭발하는 불평등과 사회의 균열을 가져왔다며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648쪽, 2만7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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