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發 ‘밀렵 감시망’ 붕괴
케냐 등 아프리카 관광수익 ‘뚝’
경비원들 일자리 잃어 감시소홀
관광에 의존하던 아프리카 주민
생존위기에 내몰리자 사냥 나서
환경단체들 기금모금에도 한계
동남아 황새·印 호랑이도‘위기’
멸종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의 야생동물들이 ‘밀렵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아프리카의 사파리 관광이 중단되자 경영위기에 놓인 공원들이 경비 인력을 줄이면서 ‘밀렵 감시망’이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간 파수꾼’ 역할을 해오던 주민들마저 생계를 위해 밀렵에 뛰어들면서 악순환이 예고되고 있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케냐에 관광객이 끊기면서 대표적인 사파리 투어 명소인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이 밀렵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공원 경비를 맡고 있는 자연보호단체 나슐라이의 직원 조지프 사남왈라는 “30년간 순찰하면서 이렇게 조용하고 비참한 상황을 본 적이 없다”며 “몇몇 경비원들은 직업을 잃었고 다른 경비원들은 정부의 이동제한이 시작되기 전에 고향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나슐라이 관리국 직원 레이야는 “공원 관광에 의존하고 있는 8000명의 주민도 생존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주민뿐만이 아니다. 지역 경제 위기로 밀렵이 늘어나면서 동물들의 생존도 위기에 처했다. 경비인력 감소로 밀렵 감시가 소홀해진 데다, 생존 위기에 내몰린 주민들까지도 야생동물 사냥에 나서고 있는 것. 국제보호협회 대표인 산쟈얀 무틀링엄은 “지난 2개월간 케냐와 캄보디아에서 야생동물과 상아 밀렵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전했다. 레이야도 “사냥 단체들이 탄자니아에서 마사이마라로 넘어오고 있다”며 “이전 사냥꾼들도 실직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면 다시 밀렵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프리카도 비슷한 상황이다. 2018년 기준 남아프리카 야생동물 관리 자금의 85%는 공원 입장료 등 관광 수익에서 나온다. 이들의 관광수입이 끊기면서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경비 체계도 무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코뿔소(라이노) 911’의 설립자 니코 제이컵스는 “남아프리카가 코로나19로 봉쇄되자마자 밀렵꾼의 습격을 받기 시작했다”며 “북서쪽 지방에서만 적어도 9마리의 코뿔소들이 사살됐다”고 전했다. 코뿔소 911은 코뿔소를 구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상 헬리콥터 수송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다. 코뿔소 뿔은 1㎏당 7000만 원 상당의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 등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케라틴’이라고 부르는 각질 성분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면서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남아프리카 지역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최근 관광명소로 개발되면서 밀렵으로부터 안전한 안식처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상황이 바뀌게 된 것. 야생동물보호협회의 팀 대븐포트는 “야생동물들은 산림 감시원들에 의해서만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에 의해서도 보호받고 있었다”며 “만약 여러분이 밀렵꾼이라면, 관광객이 많은 곳보다는 아주 적은 곳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프리카 북서부의 만크웨 야생동물 보호구역 운영 관리자인 린 맥타비시는 “우리는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위기에 처했다”며 “최근 몇 차례 밀렵꾼들의 급습이 있었지만, 관광 중지가 몇 달 동안 계속된다면 그들의 맹공격이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에 기반을 둔 한 환경단체는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환경보호 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시작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관광에 의존한 야생동물 보호 수입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도 조언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서도 코로나19 장기화로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 밀렵이 늘어나고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야생동물보전협회(WCS)는 최근 캄보디아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조류인 자이언트아이비스 개체 수가 1%가량 급감했다고 밝혔다. 동남아에서 가장 큰 물새 서식지인 프렉토알 조류보호구에서도 멸종 위기종 황새 100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WCS는 “농촌 지역의 경제 상황이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되면서 보호종에 대한 밀렵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인도에서는 호랑이 밀렵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WCS 베트남·프놈펜 지역 책임자인 콜린 풀은 “지역 주민은 숲, 조류, 습지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라며 “그들이 생존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지 않아도 되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밀렵뿐만 아니라 ‘합법적 사냥’까지 늘어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고 있다. 콜로라도주에서는 사냥이 금지된 ‘큰뿔야생양(bighorn sheep)’을 사살한 밀렵꾼에 대한 현상수배가 진행 중이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4년간 2%(25만5000명)가량 감소했던 미국의 사냥 인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반등하고 있다. 육류 공장이 문을 닫자 주민들이 직접 먹이 사냥에 나서면서다. 워싱턴주에서는 최근 한 달 밀렵 단속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3건에서 10건으로 늘었으며, 조지아주에서는 칠면조 사냥 인구가 지난해에 비해 47%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육류 공급망의 붕괴뿐 아니라 주민들의 실직 및 월급 감소에 따른 결과라고 로이터 통신은 분석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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