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계에 ‘반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이 두 사람이다. 지난 1월 국내 최고 권위 문학상인 이상문학상을 거부하며 부당한 관행에 반기를 들었던 소설가 김금희. 그리고 2016년 등단과 동시에 게이임을 밝히고, 줄곧 퀴어 소설을 발표해온 김봉곤이다. 새 ‘바람’이자 ‘파문’이었고, 그래서 ‘기대’이기도 한 두 젊은 작가가 나란히 신간을 발표했다. 김금희는 등단 11년 만에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문학동네)을, 김봉곤은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을 냈다. 흥미롭게도 김금희의 책을 만든 건 김봉곤(그는 편집자이기도 하다)이고, 김봉곤 책의 추천사는 김금희가 썼다. 각기 다른 이유로 “용기가 많이 필요했다”는 두 사람을 만나 보았다.

첫 산문집 ‘사랑 밖의…’ 김금희.
첫 산문집 ‘사랑 밖의…’ 김금희.

■ 내 글 속 ‘깊은 빡침’… 독자들이 깊이 공감

- 첫 산문집 ‘사랑 밖의…’ 김금희

“이상문학상 거부 이후 평정심 지키기 힘들어
11년 동안 쓴 산문 보며 ‘나’를 만나
이것 또한 통과해야 할 시간이라 다독여”


“책을 내는 게 두려웠어요. ‘이상문학상 거부’ 이후 내내 평정심이 아니었어요. 예민했고, 화가 많이 나 있었고…. 작가가 된 이후 가장 ‘충격’을 준 일이거든요.”

지난 7일 경기 고양시 블러썸스튜디오에서 만난 김금희 작가는 ‘그 겨울’을 ‘화(火)’라는 한 단어로 압축했다. 이를 식혀 준 건 다름 아닌 지나온 자취(自取). “11년 동안 쓴 산문들을 읽으며 그 겨울의 ‘나’뿐만이 아니라, 작가로서 11년의 경험치를 지닌 ‘나’를 만나게 됐어요. ‘아, 이것 또한 통과해야 할 시간이다’라고 마음을 다독였죠. ‘멀리 보자’라고.”

당시 김 작가는 휴대전화를 정지시켰다.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대신 식물을 길렀다. 60여 개의 화분을 돌보며 글 쓰는 시간 만큼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그는 다시 세상에 나왔다. 당연하게도, 책과 함께.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김 작가의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발표해 온 글 40여 편을 묶었다. 어린 시절 풍경과 가족 이야기, 사랑과 연애에 관한 내밀한 생각, 문학적 내력과 영감의 원천, 그리고 그동안 소설에서 드러냈던 사회문제와 노동에 관한 각별한 관심까지…. 책은 작품과 작가 사이 존재하는 ‘투명한 막’마저 걷어내고 ‘인간 김금희’를 여과 없이 노출 시킨다. 김 작가가 첫 산문집 발간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또 다른 이유다. “독자들이 가장 무서웠죠. ‘김금희 소설’의 감흥과 이미지가 깨져 버릴까봐…. 그런데 소설이 아닌 형식으로도 메시지가 순전하게 가 닿는 걸 보고 기뻤어요. 이 경험이 다시 제 소설에 투영되겠죠?”

이번 산문집은 예약판매를 포함해 출간 첫 주 1만3000여부가 팔렸다. 소설집 ‘너무 한 낮의 연애’와 장편 ‘경애의 마음’ 등으로 사랑받아 온 김 작가가 어느덧 한국 문학 대표 작가의 자리에 성큼 다가섰다는 증거다. 그는 특히 요즘 20∼30대 여성들에게 이미 하나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외, 혹은 상대적 왜소함을 이겨내려는 등장 인물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퇴고를 거치며 숨겨둔, 내 글 속 ‘깊은 빡침’을 독자들이 잘 읽어낸다”며 웃었다. “저를 포함해 한국 사회의 많은 여성이 여전히 숱한 부조리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일상적 위계나 감정적 부대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아요.”

산문집을 준비한 최근 몇 달, 김 작가가 유일하게 만난 사람은 편집자이자 소설가 김봉곤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김봉곤의 소설집 ‘시절과 기분’이 나오고, 추천사를 쓰게 됐다. “편집자로도 유능한데, 작가 김봉곤은 가끔 소름 돋을 정도로 글을 잘 써요.”

김금희 작가는 올가을 두 번째 장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을 끝내고 ‘다정한’ 산문집으로 돌아와, 위로하고 또 위로받은 그가, 앞으로 어떤 ‘김금희 월드’를 보여줄까. 이미, 몹시 기다려진다. 사진 = 김호웅 기자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김봉곤.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김봉곤.

■ 나를 ‘긍정’하는 법… 그래서 오늘도 쓴다

-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김봉곤

“게이로서 삶·이야기 포기 못해…사랑만이 혐오 이겨
이번 책엔 ‘내’가 너무 많이 투영돼 있어
솔직히 지금 사귀는 사람과 엄마는 안 읽었으면”


“반복적인 제 이야기에 ‘피로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포기’는 없어요. 저는 게이이고, 계속 ‘나’를, ‘우리’의 사랑 얘기를 쓸 거예요. 그게 저 자신을 긍정하는 방법이고, 또 사랑만이 부정과 혐오를 이긴다고 믿으니까요. 유행이니 뭐니 하는 얘기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소설가 김봉곤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본다. 성 정체성을 깨닫고, 인정하고, 밝히고, 그리고 ‘쓴다’. 매 순간 번민이 넘쳤을 것이고, 매 단계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이 모든 걸 ‘가볍게’ 털어내고 일상을 산다. 그저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한 ‘사람’으로. 바로 그 사람, 김봉곤 작가를 지난 4일 서울 망원동 창비 카페에서 만났다.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는 “첫 번째보다 조금 더 용기가 필요했다”고 했다. “이번 소설집은 정말로 ‘김봉곤’ 저 자체라서요. 너무 많이 투영돼 있다 보니…. 솔직히 지금 사귀는 사람이랑, 엄마는 안 읽었으면 했어요, 하하.”

책은 김 작가가 발표한 6편의 짧은 소설을 순서대로 엮었다. ‘김봉곤에 대한 연대기적 탐구’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다. 표제작 ‘시절과 기분’은 ‘나’ 자신이 게이라는 걸 정체화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를 7년 만에 다시 만나며 겪는 감정의 요동을 그렸고, ‘데이 포 나잇’은 아직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한 ‘나’가 겪은 폭력적인 연애의 경험이다. ‘엔드 게임’과 ‘마이 리틀 러버’는 가장 사랑했던 남자와의 이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고, ‘나의 여름 사람에게’ 속 ‘나’는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새로운 사랑을 맞이한다. 그리고 다소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지막 제목 ‘그런 생활’에 이른다. “반드시 순서대로 읽어달라.” 김 작가가 조용히 귀띔한다.

어떤 퀴어 서사는 그 세계가 낯선 이들에게 호감이나 환상을 높이기 위해 적절히 포장되기도 하지만, 김봉건의 세계는 다르다. ‘훅’ 튀어나오는 직설적인 애정 표현이나 과감한 성애 묘사 등 솔직하고 사실적이며, 때로는 적나라하다. 작가의 성 정체성이 늘 수식어로 따라다니기에, 이런 부분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그는 “내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의 형식이 주는 울타리 덕에 큰 부담은 없다”고 답했다.

작가로서의 김봉곤을 생각하면, 글을 쓰며 틈틈이 일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 역시 “본업은 편집자다”라고 선을 긋는다. 최근 소설가 김금희의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도 그가 묶어 냈다. “저의 4월 한 달은 오로지 ‘김금희’를 위해 바친 시간이었죠…. 속된 말로 영혼까지 ‘갈아서’ 만든 책인데, 아 참 그 덕인지 출간하고 저 대리로 승진했어요!”

소설집 제목에 빗대어 물었다. 김봉곤은 지금 어떤 시절, 어떤 기분 속에서 살고 있나. “지금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시절’ 속에 있어요. 에너지를 최대치로 쓰며…. 기분은, 그래서… 약간 서글픈데요? 하하.” 사진 = 신창섭 기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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