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S ‘아미’, 집단문화 만들어
유퀴즈, 시민과 함께하는 토크
펭수, 현실과 허구 경계 허물고
워크맨은 ‘Job’ 활용해 동질감
공감·공유로 ‘하나의 세계관’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잡아
방송 진행자가 “이 잡것들아!”라고 외친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맞아요. 저 잡것이에요!”라고 화답한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적어도 유튜브 채널 ‘워크맨’의 구독자인 379만 명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다. 방송인 장성규가 진행하는 ‘워크맨’은 직업 체험을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이다. 직업을 뜻하는 영단어 ‘잡(Job)’을 활용해 ‘워크맨’의 구독자들은 ‘잡것들’로 불린다.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다채널 시대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하는 호칭과 소통법이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세계관을 공유하는 놀이문화
방송인 유재석, 조세호가 MC를 맡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시청자들은 ‘자기님’으로 불린다. 평소 유재석이 지인들을 ‘자기야∼’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데서 착안해 유재석과 조세호는 서로를 ‘큰 자기’와 ‘작은 자기’로 부르고, 퀴즈를 푸는 참가자들과 시청자들을 향해 ‘자기님’이라고 깍듯이 호칭한다. 지난달 15일, 50회를 맞았을 때는 “이렇게 50회까지 온 건 모두 자기님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이는 하나의 세계관이라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는 서로를 ‘잡것’ 혹은 ‘자기’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 프로그램을 즐기고 동참할 때는 기꺼이 약속된 호칭을 공유한다. 또 다른 예는 지난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EBS 크리에이터 펭수다. 펭수와 팬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 ‘펭하’와 ‘펭바’라고 외친다. ‘펭수 하이(hi)’와 ‘펭수 바이(bye)’의 준말이다.
이런 콘텐츠 속 세계관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며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지난 4월에는 4·15 총선을 앞두고 펭수와 유사한 모습을 한 가짜 펭수가 선거 유세 현장에 등장해 논란이 빚어졌다. 당시 JTBC ‘뉴스룸’ 비하인드 플러스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며 “본펭귄 입장을 들어보려고 연락했지만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며 “매니저와 통화했는데 펭수가 10살이라 이 부분에 직접 답하기 어렵다고 한다. 펭수는 본펭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며 앵커와 취재 기자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뉴스에서조차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하나의 새로운 놀이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는 셈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이렇듯 그들만의 호칭을 사용하는 행위는 K-팝 스타를 좇는 팬덤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그룹으로 발돋움한 방탄소년단(BTS)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세계적인 무대에 서거나 의미 있는 상을 받았을 때 “아미(ARMY)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외친다. BTS를 ‘국가대표급 그룹’이라 칭하지만, 그들이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BTS를 좇는 다국적 아미가 국가 간 장벽까지 허물고 집단 문화를 공유하며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빅뱅은 VIP(빅뱅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소녀시대는 소원(소녀시대와 팬은 하나), 아이유는 유애나(사랑하는 너와 나), 신화는 신화창조(팬들은 신화를 창조시킨 존재)라고 각각 팬들을 부른다. 그들만이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한 것이다.
기성세대의 경우, 라디오의 문법을 생각하면 보다 이해가 쉽다. TV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반면, 라디오는 특정 주파수를 찾아 듣는 청취자들을 ‘가족’ 개념으로 껴안는다. ‘별이 빛나는 밤에’와 ‘FM 음악도시’의 DJ가 각각 별밤지기, 시장님이라 불리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런 성향은 범(汎) 대중보다는 소수의 집단 문화를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가 문화 시장의 주축으로 등장하며 강화됐다. 또한 콘텐츠 제작자들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구독자 혹은 시청자들에게 특정 호칭을 붙이며 동질감을 형성하려고 시도한다. 이재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참여가 일반화되며 스타와 팬들은 동등하게 소통하는 위치가 됐다”며 “과거에는 팬들이 닿을 수 없는 스타를 일방적으로 추종했지만, 이제는 스타가 팬들을 친근하게 별명으로 부르는 전략을 구사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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