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성(性) 역할을 바꿔보는 놀이를 해봤을 것이다. 남자아이가 치마를 입거나, 여자아이가 머리를 짧게 하는 것. 그러나 그건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고, 더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예 기억에서조차 사라진다. 나중에 옛 사진첩에서 여장(남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내가 이런 적이 있었나” 하며 웃게 되는 정도다.
영화가 가진 분위기도 대략 이 범주 안에 있다. 프랑스에서 촉망받는 여성 연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야기나 인물을 일부러 재단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에 카메라를 무심히 가져다 놓은 듯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10대라고 해서 성 정체성이 무시되거나 가벼울 수는 없다. 카메라가 인물과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정체성의 고민, 일상의 폭력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10세 아이 로레(조 허란)는 한눈에 보기에도 남자 같은 여자아이 ‘톰보이’다. 짧은 머리, 중성적 얼굴, 아직 발달하지 않은 가슴, 그리고 활동하기에 편한 반 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 외모만으론 영락없는 ‘소년’이다. 그러나 감독은 목욕 장면을 통해 로레의 몸을 비추면서 이 아이는 분명 ‘소녀’임을 일러준다.
하지만 로레는 이사 가서 처음 본 소녀 리사에게 자신을 ‘미카엘’로 소개한다. 미카엘은 프랑스에서 흔히 남자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미카엘이고 싶은 로레는 아주 사랑스러운 여동생 잔과 달리, 인형놀이보다는 밖에 나가 공 차는 게 좋다. 축구를 하다가 친구들이 웃옷을 벗어던지면 자신도 따라 한다. 남자아이들이 운동장에 침을 뱉는 것도 신기하다. 거울을 보고 혼자 침 뱉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생리 현상은 어쩔 수 없다. 미카엘은 숲 속에 들어가 몰래 소변을 보다가 그만 친구에게 ‘성 정체성’을 들키고 만다. 미카엘은 그 길로 집으로 도망쳐 버리고 불안과 혼란에 빠진다. 2차 성징이 확연해지는 10대 중반 전까지 어린아이들의 성 정체성은 미완성이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 역할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 미카엘이 거짓말을 한 것도 성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보다는 그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시아마 감독이 말하고자 한 것도 아마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성은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학습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외부 환경에 의해 강요되는 것인가.
성 정체성 논란을 떠나 무엇보다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캐스팅이다. 로레 역의 조 허란은 진짜 남자아이 같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배우를 데려왔는지 궁금할 정도다. 시아마 감독은 “조 허란을 만나는 순간 무조건 이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시아마 감독은 국내에도 팬이 많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각본상을 받으면서 국내 개봉해 약 15만 명을 모았다. 당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경쟁했다. ‘톰보이’는 시아마 감독이 2011년 만든 작품이다.
자극적이지 않되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이 영화의 최대 장점. 그러나 10대 여자아이의 몸을 너무 자주 보여줘 불편하다.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잦다. 조 허란의 ‘멘털’이 괜찮을지 슬쩍 걱정된다. 12세 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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