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근(1933∼2015)

오늘 저녁은/ 아욱국이 먹고 싶다./ 오래전 나의 젊으신 아버지가/ 드셨던 것처럼.

폭염 땡볕에 땀은/ 소낙비처럼 후드득 떨어지고/ 황토밭 열기는 한증막처럼 치솟던 날

고추, 상추, 무, 호박…/ 빛나는 전리품들을/ 아버지는 개선장군처럼/ 수레 가득 끌고 오시고/ 어머니는 아욱국을 끓이셨다.

“국은 아욱국이 최고지.”/ 아버지는 밥을 드시기 전에/ 허기와 갈증을 한꺼번에 채우려는 듯/ 아욱국 한 그릇을 훌훌 비우셨다.

풋고추 된장에 찍어 상추쌈으로/ 밥을 많이 드시고/ 아욱국 한 그릇을 또 비우셨다.

돌아가시기 전 호스로 이유식만 삼 년/ 아욱국 한 번만 먹고 싶다던/ 야위고 늙으셨던 아버지…

아욱국 훌훌 드시던/ 그 옛날의 젊으신 아버지 모시고/ 오늘 저녁은/ 아욱국을 먹고 싶다.(자작시 ‘아욱국’)

부친은 황해도 연백 출신의 실향민이셨다. 그의 생애는 우리 부모 세대가 모두 그러하듯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닮았다.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당시에는 남한 땅이었으나 6·25전쟁 후 북한 땅이 된 곳에서 태어나셨다. 해방 정국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한 날 단독 월남한 것이 고향 부모님과의 영원한 생이별이 되었다.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국군에 자원입대해 참전했고, 인제지구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상이 제대했다. 전후 극심한 가난과 대량실업의 암울한 시기를 거쳤고, 이후 도시근교 농촌 지역에서 빈농의 오랜 궁핍을 견디셨다. 가난에 대해 사실 핑계 댈 이유야 차고 넘쳤겠으나, 부친의 모습은 항상 당당하고 떳떳하셨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 없는 노동과 몸에 밴 검소함이 당당함의 원천이었던 듯하다.

부친은 자립할 수 없는 가난한 농민에서 출발했지만, 농협대 1기생의 경험으로 비닐하우스 등 당시의 선진농법을 지역 농민들과 공유하는 농촌혁신 운동을 하셨다. 또 새마을지도자로 활약해 당시 비자립 농가가 대다수였던 마을을 자립 마을로 변모시키는 데 기여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 집은 늘 가난했지만, 부친의 부지런하고 희망을 찾아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며 나는 결코 가난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 후 농촌운동에서 은퇴한 부친은 자식 교육에 매진하셨다. 여전히 넉넉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채가 계속 쌓여 갔는데도 자식 3형제는 부친 덕에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막내의 대학교육을 다 마쳤을 즈음 부친은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 다행히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자식들로 인해 부친은 보상을 받은 셈이 되었다. 부친의 삶을 돌이켜보면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가난으로부터 국가를 발전시키고, 자신의 낙보다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털어 넣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전형적인 불굴의 자기희생 역사다. 이것은 단지 교과서에만 있는 죽은 역사가 아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한 그릇의 아욱국을 소망하고 마지막 호흡을 힘겹게 내뱉으셨던 우리 모든 아버지의 살아 있는 역사다. 부친은 5년 전 이맘때, 하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모든 낙(樂)을 자식 세대에 미룬 채 한 줌의 꽃잎이 되어 흩어지셨다.

아들 최병암(산림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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