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주목받았던 兩會
양회(兩會)에선 수많은 의사결정과 함께 중국의 주요 정책 방향이 결정돼 왔기 때문에 매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2년 전 양회에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 이목을 집중시켰고, 2008년에는 성장률 목표를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대로 낮추는 경제정책 대전환을 결정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았던 양회는 역시 2018년 양회다.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선 1982년 제정된 헌법의 5차 수정이 이뤄졌는데, 대표적으로 △주석의 3연임 금지 조항 삭제 △헌법 내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삽입 △중국 공산당 영도의 강조 △국가감찰위원회 설립 및 역할 규정 등이 포함됐다.
이날 표결로 시 주석은 향후 주석직을 두 차례 이상 연임할 수 있게 돼 장기 집권의 포석을 깔았다. 또 정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시 주석의 개인적 권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 주석의 강력한 권력체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사에서도 시 주석의 최측근이자 ‘행동대장’이었던 왕치산(王岐山)이 전인대 대표 및 부주석이 돼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고, 류허(劉鶴)가 경제 부총리에 선출되는 등 소위 ‘시자쥔(習家軍)’이 대거 중앙 정계 요직에 진출했다.
당시 70세였던 왕치산의 선출은 정치인들의 불문율이었던 ‘7상8하(67세까지 올라가고 68세부터 내려간다는 의미로 68세엔 퇴임을 준비한다는 중국 관계의 불문율)’를 깨는 것이어서 향후 시 주석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류허 부총리와 이강(易綱) 런민(人民)은행장, 궈수칭(郭樹淸) 은행보험관리감독위원회 주석 등의 임명은 경제 분야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입지를 약화시켜 시 주석에게로 권력의 집중이 더 강해졌다. 군사 분야에서도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에 시 주석의 측근인 웨이펑허(魏鳳和) 로켓군사령관이 선출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인 2008년은 중국이 개혁·개방 30주년을 맞고 베이징(北京)올림픽을 개최하던 해로, 당시 양회에서 시 주석과 리 총리가 부주석과 부총리가 돼 차기 지도자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정부 조직개편안인 ‘대부제(大部制)’ 개혁안도 모습이 드러났다. 당시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하던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전년보다 3.4%포인트 감소한 8% 수준으로 제시하고, 거시조정을 통해 경제 안정을 유지하는 한편 안정적인 재정정책 및 긴축통화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2008년 양회에서였다.
또 소수민족 자치구인 시짱(西藏)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던 해다. 이 외에도 매년 3월에 정례적으로 양회를 개최하기로 규정하고 전인대 대표 임기를 5년으로 정한 1993년 양회와 개최 날짜를 3월 5일로 못 박은 1998년 양회도 주요 양회로 꼽힌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양회(兩會)에선 수많은 의사결정과 함께 중국의 주요 정책 방향이 결정돼 왔기 때문에 매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2년 전 양회에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 이목을 집중시켰고, 2008년에는 성장률 목표를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대로 낮추는 경제정책 대전환을 결정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았던 양회는 역시 2018년 양회다.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선 1982년 제정된 헌법의 5차 수정이 이뤄졌는데, 대표적으로 △주석의 3연임 금지 조항 삭제 △헌법 내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삽입 △중국 공산당 영도의 강조 △국가감찰위원회 설립 및 역할 규정 등이 포함됐다.
이날 표결로 시 주석은 향후 주석직을 두 차례 이상 연임할 수 있게 돼 장기 집권의 포석을 깔았다. 또 정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시 주석의 개인적 권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 주석의 강력한 권력체계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사에서도 시 주석의 최측근이자 ‘행동대장’이었던 왕치산(王岐山)이 전인대 대표 및 부주석이 돼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고, 류허(劉鶴)가 경제 부총리에 선출되는 등 소위 ‘시자쥔(習家軍)’이 대거 중앙 정계 요직에 진출했다.
당시 70세였던 왕치산의 선출은 정치인들의 불문율이었던 ‘7상8하(67세까지 올라가고 68세부터 내려간다는 의미로 68세엔 퇴임을 준비한다는 중국 관계의 불문율)’를 깨는 것이어서 향후 시 주석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류허 부총리와 이강(易綱) 런민(人民)은행장, 궈수칭(郭樹淸) 은행보험관리감독위원회 주석 등의 임명은 경제 분야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입지를 약화시켜 시 주석에게로 권력의 집중이 더 강해졌다. 군사 분야에서도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에 시 주석의 측근인 웨이펑허(魏鳳和) 로켓군사령관이 선출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인 2008년은 중국이 개혁·개방 30주년을 맞고 베이징(北京)올림픽을 개최하던 해로, 당시 양회에서 시 주석과 리 총리가 부주석과 부총리가 돼 차기 지도자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정부 조직개편안인 ‘대부제(大部制)’ 개혁안도 모습이 드러났다. 당시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하던 중국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전년보다 3.4%포인트 감소한 8% 수준으로 제시하고, 거시조정을 통해 경제 안정을 유지하는 한편 안정적인 재정정책 및 긴축통화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2008년 양회에서였다.
또 소수민족 자치구인 시짱(西藏)자치구 수도 라싸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던 해다. 이 외에도 매년 3월에 정례적으로 양회를 개최하기로 규정하고 전인대 대표 임기를 5년으로 정한 1993년 양회와 개최 날짜를 3월 5일로 못 박은 1998년 양회도 주요 양회로 꼽힌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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