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 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김영사

헨리 마크람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슈퍼컴퓨터 속에 뉴런 1000억 개를 심어 인공두뇌를 만들고자 하는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와 유럽연합(EU)이 10억 유로를 지원한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향후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다. 세 번째 아이며 첫아들인 카이가 태어난 20여 년 전에도 헨리는 전도가 유망한 신경과학자였지만, 아들의 자폐증 징후에 대해서는 무력하게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당시 그는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돼 인간으로 발달하는지, 연결오류는 어떻게 발달을 저해하는지를 측정하는 방법을 만들었고 국제표준이 됐다. 그러나 연결오류 중 가장 잘 알려진 발달장애가 바로 자폐증이었다.

이후 헨리는 무려 15년이나 자폐증 연구에 몰입했고 그의 연구결과는 자폐증에 관한 일반적인 통설들을 뒤집어 놓았다. 단지 그가 뛰어난 연구자이기만 했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을 통해 자폐증을 이해하고 매달렸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로렌츠 바그너가 헨리와 카이를 취재하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쓰였다.

카이는 태어나자마자 눈동자가 소리와 빛을 따라 쉼 없이 움직여 부모를 긴장시켰지만, 의사는 아스퍼거 증후군 검사 등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두 살쯤에는 행인에게든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든 누구에게나 달려가 다리를 끌어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커갈수록 아이는 집에서 자제력을 잃어 갔고, 유치원에서 문제아가 됐다. 사람들을 좋아해 그 주변을 맴돌던 아이는 외면과 밀침이 거듭되자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무력한 아버지이자 무능한 학자일 수밖에 없었던 헨리는 카이를 위해 자폐증 연구에 매달렸다. 결국 2007년 자폐인은 감정이 결핍돼 스스로 세상과 단절시킨다고 알려진 가설을 뒤집는 ‘강렬한 세계 증후군’(The Intense World Syndrome) 가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기존 가설과 반대로 자폐인의 뇌는 결핍돼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성능이 좋은 게 문제였다. 뇌가 과하게 네트워크화돼 과도한 정보를 저장한다. 그로 인해 자폐인은 세상을 적대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 강렬하게 경험한다.

예컨대 카이에게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비행기 활주로의 소음 같고, 옅은 냄새조차 자리를 피해야 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카이는 모든 감각이 증폭된 ‘강렬한 세계’에 살고 있으며, 감정이 결핍돼 스스로 단절했던 것이 아니라 똑같은 자극도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뒀던 것이다. 자폐인이 아니라 소위 일반인이 그들을 공감하지 못한 것이란 진실을 접하며 헨리는 눈물을 쏟는다. 책은 헨리가 상처와 고통, 실패 끝에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새로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렸다. 304쪽, 1만38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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