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 사이먼 L 루이스, 마크 A 매슬린 지음, 김아림 옮김 /세종서적
다른 종에 지구의 半 할당 주장
존재가 지구에 해만 되는 인간
인류세 아픈 역사에 해법 제시
기본소득 통해 돈벌이 보장땐
먹고 살려는 남용에서 벗어나
사회·환경문제 풀 기회 찾게돼
‘인류세’라는 용어는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과 생태학자 유진 스토머가 2000년 국제지도생물권계획(IGBP) 뉴스레터에 발표한 한 페이지 분량의 논문에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17세기 중반 영국 왕실에는 ‘대기오염을 줄이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권고’가 줄을 이었다. 더 직접적인 표현은 “계몽주의 시대를 이끈 거인의 한 사람이자 뷔퐁 백작으로 더 잘 알려진” 조르주루이 르클레르의 ‘자연의 시대’에 등장한다. 1779년 출간된 책에서 뷔퐁 백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종에게 찾아볼 수 있는 가장 경멸적인 조건은 야만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문명화된 국가에서 나타난다. … 비옥하게 하는 대신 결핍되게 하고 쌓아 올리는 대신 파괴하며, 무엇이든 새롭게 채우는 일 없이 모조리 소모한다.”
산업혁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인간의 탐욕이 고발되기 시작했지만, 지구에 대한 착취는 이미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으로 퍼져 나가 정착”하는 사이 인류는 “야생동물을 멸종시키고, 숲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길들였으며,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등 지구에 해만 가했다. 먹고살려면 별 수 있었겠느냐 항변할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는 늘 ‘먹고살려는’ 차원을 넘어 축적하고 남용했다는 사실이다. 인류세는 아직 학계가 공인한 개념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들은 “인간 활동이 지금 지구가 통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평가하는 것”이 ‘지금, 여기’의 과제라고 지적한다. 전 세계에 걸친 개별적 환경문제들의 장황한 목록, 즉 “생물 종의 멸종,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독성 화학 오염, 온갖 곳에 버려진 쓰레기” 등의 지표를 통합해야 인류세라는 개념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고, 나아가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이후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인류세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들은 “지구를 인류세 이전 단계로 돌려놓는 일이 가능할까?” 묻지만 “인류의 흔적이 각인된 새로운 퇴적물 층이 형성되기 시작해야만”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즉 현재의 인류세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을 대응하는 방법도 계속 변화·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걱정과 기대와는 달리 “과학 공동체는 아직도 인류세의 공식적인 전문적 정의와 거리가 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은 인류세를 다룬 여느 책과는 몇 가지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과학적 발견을 접목한 것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대책만큼은 새롭다. 물론 그 자체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바로 ‘보편적 기본소득’의 신속한 추진이 대책 중 하나다.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거부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도록 유도, 환경파괴를 막고 지구와 인간의 공존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자장 안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가 “임대료를 지불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직업에 속박되는 대신 사회, 환경,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제시한다.
한편 에드워드 윌슨의 주장을 계승·발전시키면서 “지구의 절반을 재야생화” 하자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다른 종의 이익을 위해 지구 표면의 절반을 우선 할당”하는 것이 “합리적인 타협”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사람이 살지 않는 척박한 땅만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단서 조항도 단다.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을 읽는 내내 지구의 절반을 미리부터 비웠으면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저자들의 대담한 도전에 당장 우리는, 아니 나는 응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되돌아본다. 432쪽, 2만 원.
장동석·출판평론가, ‘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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