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논설위원

교활하다는 말은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술수나 행동 따위가 능란하고 간교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어근인 교활(狡猾)은 하나의 단어지만, 네발 달린 짐승을 나타내는 2개의 한자가 합쳐진 말이다. 첫 글자 ‘교(狡)’는 고대 중국 옥산(玉山)에 살았다는 상상의 동물로, 개를 닮은 짐승을 가리킨다. 온몸에 표범 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소뿔이 나 있다.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대풍이 든다고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놈은 변죽만 울릴 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교활의 뒷글자 ‘활(猾)’ 또한 ‘교’ 못지않게 간악한 짐승이다. 겉모습은 사람을 닮았으나 전신에는 돼지털이 나 있으며, 도끼로 나무를 찍는 듯 섬뜩한 소리를 낸다. 이놈이 세상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공포에 전율한다. 뼈가 없는 ‘활’은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공처럼 몸을 작게 말아 스스로 호식 당한다. 그의 간계는 호랑이 뱃속에서 시작된다. 돌돌 말린 몸을 본모습으로 푼 ‘활’은 호랑이의 오장육부를 뜯어먹는다. 마침내 호랑이가 죽으면 게걸스러운 표정으로 느실느실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본 사람은 오금이 저려 도망치지도 못한 채 내장부터 뜯어먹힌 호랑이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 모두가 코로나19 사태로 지쳐 있는 이때 고대 기서(奇書) 속의 잔악한 짐승 얘기를 꺼낸 것은 이유가 있다. 북한군의 ‘의도된’ 대남(對南) 총격 도발 때문이다. 지난 3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국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자행한 북한군의 총격은 조준 사격이 아니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1.5㎞ 거리에서 쏜 북한군의 중화기 고사총(14.5㎜ 기관총) 4발이 국군 관측소 외벽에 1.5∼2m의 탄착군을 형성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문을 한 자도 어기지 않고 지키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북한군이 간파하고 역이용한 총격 도발이다. 참으로 교활하다는 말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군 당국은 13일에도 북한의 ‘우발적 총격 가능성이 크다’며 적을 감쌌다.

망전필위(忘戰必危),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를 맞는다. 북한의 대남공작 총괄이 교체됐다고 한다. 교활한(cunning) 적을 잊고 평화 환상에 취하면 경계심이 풀리게 마련이다. 새 대남공작 총괄의 과시욕을 철저히 경계해야 할 때다.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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