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지난 3일 아침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군 전방초소(GP)에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땅땅땅 총성이 울려 퍼졌다. 우리 3사단 GP 장병들이 근무하는 관측소에 14.5㎜ 중기관총인 고사총 4발이 2m 이내 탄착군을 형성했다. 장갑을 뚫을 정도로 고사총 위력이 커 GP 관측소 근무장병들은 강한 진동과 함께 벽에 스파크 발생을 인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고사총에 한 발이라도 맞으면 즉사한다. 군사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숙련된 사수가 정조준했을 것으로 판단하지만, 합참은 북한군 교신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초지일관 ‘우발적 총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격이 가능해지려면 안전장치부터 풀어야 한다. 총기점검은 탄창을 빼고 하는 게 상식으로, 북한 GP 근무 민경대대원들이 그런 실수를 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무엇보다 북한은 사건 11일이 경과했는 데도 9·19 남북군사합의 1조 5항(비정상적 상황 시 즉시 통보의무) 위반 해명을 요구하는 대북 통지문에 일언반구도 없다. ‘최고 존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 선언조차 휴지 조각 취급한 것이다. 최소한의 신뢰조차 없이 밀어붙여 DMZ에 평화가 왔다고 선언한 남북군사합의가 기만적이며, 우리가 허구적 평화쇼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한 사건이다.

고사총은 유사시 북한군 GP 민경대대가 DMZ에서 아군 GP와 일반전초(GOP)를 공격하는 핵심 화력이다. 2015년 8·4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 당시 북한군 전방사단은 고사총과 76.2㎜ 직사 견인포로 남측지역을 타격해 DMZ 강습돌파 작전 능력을 시험한 바 있다. 합참은 최초 브리핑에서 고사총 지상 유효사거리가 남북 GP 간 거리(1.5㎞)보다 짧다는 잘못된 정보를 오발의 근거로 제시해 13일 사과하기까지 했다. 고사총 대공(對空) 유효사거리 1.4㎞와 지상 유효사거리(약 3㎞)를 착각했다니 어이가 없다. 또 대응과정에서 아군 GP의 주력기관총인 K6 원격사격체계(KR6)가 기관총 공이 파열로 사고 발생 32분이나 지나 K3 경기관총 대응이 이뤄졌다. 총기 정비도 엉망이다. “군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기가 찬다”는 장탄식이 쏟아진다.

북한군은 한국군 3사단과 구원(舊怨)이 있다. 1973년 3월 7일 북한군이 DMZ 표지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우리 3사단 병력에 총격을 가해 2명의 장교와 부사관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박정인 3사단장은 155·105㎜ 곡사포로 북한군 599 GP와 사격을 가한 진지를 초토화해 80여 명을 사살했다. 고사총 도발은 문재인 정부 군사대응태세 시험의도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남북관계 진전에 매달리는 이 정부가 강하게 대응하지 못할 것을 예상한 치밀한 도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군 입장에서는 피해 당사자가 친절하게 오발이라 감싸며 자신들 대변인처럼 행동하는데 굳이 해명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오죽하면 군 당국이 북한군이 해야 할 변명을 대신해 ‘북한군 대변인’ 같다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오발 논란으로 남남갈등만 키운 셈이 됐다. 군은 적의 도발을 분쇄하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조직이다. 군 본연의 자세를 벗어나 정부 정책에 종속돼 판단이 흐려져 ‘정치군인’으로 변질되면 안보가 위태로워진다.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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