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저신용 등급을 포함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 설립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저신용 등급을 포함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 설립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신용회사채 매입기구 설립

사상 첫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
일시위기 ‘금융사각 기업’ 지원
시장전체 ‘긍정적 신호’ 될 듯
정부 출자로 韓銀 리스크 덜어


10조 원 규모의 저신용등급을 포함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특수목적법인·SPV)가 이르면 6월 말부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설립·가동됨에 따라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이번에 출범하는 SPV는 산업은행이 채권 매입을 주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은행이 SPV에 직접 대출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SPV 설립 과정에서 정부와 한은 간 의견 대립이 적지 않았지만 사상 처음으로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채권 매입에 나서기로 결정함에 따라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부와 한은이 비우량 회사채까지 매입하는 만큼 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 향후 부실 부담이라는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일 한은 등에 따르면 SPV 재원조달 구조는 정부가 1조 원을 출자해 산은의 출자를 뒷받침하고 산은은 1조 원의 후순위 대출금을 지원한다. 한은은 8조 원의 선순위 대출로 자금을 부담한다. 당초 한은 내부에선 산은에 SPV 재원의 90%를 대출해주고 산은이 한은에서 빌린 돈으로 회사채와 CP를 매입하는 방안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 요청에 따라 한은이 SPV에 직접 대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대신 산은을 통해 직접 출자에 나서 한은의 신용리스크(위험)를 덜어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만든 회사채 매입 SPV 구조를 그대로 따른 셈이다. 한은은 ‘캐피털 콜’ 방식으로 SPV가 자금요청을 할 때 대출에 나서게 된다. 기업의 조기상환, 시장 정상화 등에 따라 SPV 운용규모가 축소될 경우 한은 선순위 대출금부터 우선 상환이 이뤄진다.

한은의 SPV에 대한 직접대출은 한은법 제80조에 근거했다. 한은법 제80조에 따르면 한은은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크게 위축되는 등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성이 큰 경우 금융통화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영리기업에 대출해줄 수 있다. 정부와 한은은 앞서 발표한 일련의 채권시장 안정 대책에도 불구하고 비우량등급 회사채 시장 등에서 경색이 지속되자 뒤늦게 협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 설립 등 시장 안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신용도가 낮아져 금융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저신용 회사채·CP 매입을 지원하기 위한 기구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SPV는 우선적으로 우량 등급(회사채 기준 AAA∼AA등급)과 비우량 등급 중 A등급 채권을 주로 매입하기로 했다. 다만 투기등급인 BB등급의 경우도 코로나19 충격으로 신용등급이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하락한 경우인 이른바 ‘폴른 에인절’(추락 천사)에 한해 일부 매입하기로 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해당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는 효과도 있지만 이와 같은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의 크레디트 채권투자를 유발할 수 있는 간접적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송정은 기자 eun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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