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발제문은 불편한 진실 공개
지난 10년 여론조사 모아 보니
경제·안보에선 與 정책이 주류
통합당 노선 바꿔야 도전 가능
이념도 시대 적응 못 하면 도태
기본소득에도 다른 대안 필요
미래통합당이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4·15 총선 결과를 분석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선거 캠프의 전략기획팀장이었던 장경상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이 기조발제를 했다. 장 국장은 발제문에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모든 선거의 결과를 요약하고, 주요 이슈를 갤럽 여론조사를 토대로 분석해놓았는데, 읽다 보니 중요한 사실 하나를 뒤늦게 깨닫게 됐다.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대부분 국민 다수 쪽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 현안을 예로 들면, 2004년 5월 갤럽 조사에서는 ‘성장 우선’이 66.1%로 ‘분배·균형 우선’ 33.3%보다 훨씬 많았다. 바로 이듬해 조사에서 응답자의 57.7%가 우리 경제의 나아갈 방향이 ‘유럽식’이라고 답변했고, 41.1%가 ‘미국식’이라고 답변해 기류 변화를 보였다. 2011년 1월에는 ‘무상 복지 정책에 관심이 간다’는 의견이 61%로 ‘관심 가지 않는다’ 39%를 넘어서더니, 6월에는 ‘복지와 분배 우선’이 68%로 ‘성장 우선’ 30%를 압도했다. 2013년 1월 조사에서도 ‘복지와 분배 우선’이 60.1%로 ‘성장 우선’ 36.8%보다 훨씬 많았다.
북한과 관련해서도 ‘평화’(55.2%)를 ‘안보’(42.8%)보다 중시하는 조사 결과가 2007년 4월부터 확인됐다. 2018년 조사에서는 각각 58% 대 37.9%로 더 벌어졌다. 그해 6월 미·북 정상회담 직후 조사에서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8%로 반대 37.9%보다 많았다. 이듬해 조사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에 찬성하는 의견이 59.4%로 반대 32.1%보다 많은 등 일본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반일(反日)이 대세였다. 모두가 이미 발표됐던 조사 결과다. 단편적으로 나올 때는 그런가 하고 넘어갔지만, 모아 놓으니 큰 흐름이 보이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책 방향이 시대에 맞았던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이 유권자들을 쫓아다녔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어쨌든 민주당은 ‘주류’에 속하게 됐고, 통합당은 그 반대 처지가 됐다.
통합당은 2016년 총선부터 네 차례의 전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앞으로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선 재정비다. 관성적으로 유지해온 정책 방향이 유권자 다수와 괴리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합당의 경제 노선은 성장 8 대 분배 2, 또는 7 대 3 정도였을 것이다. 이제는 6 대 4나 5 대 5 정도가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인다. 무조건 다수의 편에 서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선점해 있기 때문에 효과도 작을 것이다. 같은 이슈라도 민주당과는 차별화된 해법을 내놓거나 아예 새로운 어젠다를 던져 이슈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기본소득을 의료·교육·실업 등 다른 복지 축소와 연계해 제시하는 것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북한 압박이 아니라 대화의 해법을 찾아야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원칙은 중요하지만, 그것도 달라진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이념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정치의 가장 큰 목적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다.
물론 통합당이 도저히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이슈도 있다.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7일 조사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에 대해 중도 유권자는 ‘현 수준 유지’(41%)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확대’(25%), ‘축소’(26%)가 비슷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밀어붙이기에도 불구하고 설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20세기까지 우리 유권자들은 ‘경제 발전’ ‘민주화’ 같은 명분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왜 하필 이익을 논하는가. 오직 인의가 있을 뿐(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이라는 맹자의 말로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유권자들은 달라졌다. 철저하게 실용을 중시한다. 2019년 4월 4일 조사에 따르면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42%·긍정적은 30%)이라고 보면서도 ‘잘된 일’(51%·잘못된 일은 39%)이라고 답변했다. 나라 경제보다 나의 ‘워라밸’이 훨씬 중요한 유권자들은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데(What’s in it for me)?”를 묻고 있다. 명분이 아니라 실리(實利)를 챙겨주는 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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