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는…

약 30년간 이미경 소장이 몸담아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국내 최초의 성폭력 전문 민간상담기관이다. 성폭력에 대한 법과 제도가 미비하던 1990년대부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왔고, 피해자 치유와 역량 강화를 해온 이곳은 기존의 활동에 더해 이 소장의 희망처럼 성폭력에 대한 연구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문을 열기 전에는 국내에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상담기관은 사실상 없었다.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중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대응하는 곳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여성학을 공부하다 이에 문제점을 느낀 이 소장뿐만 아니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등 뜻있는 여성계 인사들이 1990년부터 개설 준비를 시작해 이듬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공식 설립됐다.

상담소를 개소하자마자 21년 전 성폭행범을 살해한 김모 씨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 서울대에서 교수가 조교를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상담소는 ‘성희롱도 범죄’라고 주장하며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피해자를 지원했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많은 여성인권단체와 연대해 결국 6년간의 법적 투쟁 끝에 교수가 조교에게 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는 성희롱에 대한 국내 첫 판결이었다. 이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성범죄에 대한 개념을 확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 소장은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등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고 우리 인류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한 것 같다”며 “정치, 경제 다 중요하지만 우리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화와 면접, 온라인 상담을 통한 치유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 왔다. 지금까지 8만6000건이 넘는 상담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상담통계와 분석자료 등도 발표한다. 심리적 치료는 물론이고 의료·법률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일정 기간 머물며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열림터’도 운영 중이며 성폭력 관련 부설 연구소 ‘울림’도 설치돼 있다.

이 소장은 “성폭력에 대한 연구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부설 연구소 ‘울림’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앞서 이 소장은 지난 2012년 이화여대 교수로 있던 당시 학교 산학협력단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공감성폭력상담소 등과 함께 성폭력 피해자 권리에 대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이때 만든 동영상 ‘모모씨 증언하러 법정가다’는 아직도 대법원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고 한다.

나주예 기자 ju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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