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지인과 경기 포천의 한 퍼블릭골프장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팀에 남자 캐디가 배치됐습니다. 라운드를 돌면서 느꼈던 점이 캐디치곤 범상치 않아 보여 자세히 물었더니 자신을 투어프로라고 소개합니다. 27세이며 제대 후 시드를 잃어 2부 투어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대회가 없어 캐디로 일해 온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골프장에서 만나 본 남자 캐디 중에는 프로지망생이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준회원인 세미 프로는 더러 있었습니다. 어렵게 캐디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골프를 익혀 투어 프로까지 된 경우는 여럿 봐왔지만, 투어프로가 생계를 위해 캐디로 나선 경우는 처음 접했습니다.

마음이 짠해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연습에만 몰두했으면 좋겠지만, 부모님께 더는 손만 벌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일을 해 돈을 벌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처럼 캐디가 된 선배나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며 대리운전이나 오토바이 배달로 생계를 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는 자원해서 하루 2번의 라운드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대회가 다시 열리면 투어 경비에 보태기 위해서죠. 간혹 오전 첫 팀이 나가기 전이나 2부 마지막 팀이 나간 뒤, 자투리 시간에 9홀 실전 라운드를 할 수 있고, 일을 마친 뒤 골프장 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보너스’는 주 1회 마셜로 진행봉사를 해야 합니다. 골프장에 물어보니 지난해부터 투어프로가 캐디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7홀인 이 골프장에는 전체 90명 캐디 중 남자 캐디가 점차 늘더니 이젠 50%나 된다고 전합니다. 이들 중에는 고시 패스보다 어렵다는 프로테스트를 통과한 ‘KPGA 정회원’도 상당수입니다.

올해 초 구자철 KPGA 회장이 취임하자 프로들은 앞으로 대회가 많아질 것이라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자에 비해 대회 수가 적었던 남자 골프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회가 더 쪼그라들었습니다. 여자골프는 지난주부터 시작됐지만, 남자골프는 예정된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던 대회마저 사라지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째 대회 한 번 열리지 않았습니다. KPGA가 20일 발표한 2020시즌 새 일정을 보면 한국오픈 등 7개 대회가 무더기로 취소돼 올해 11개 대회로 줄어 옹색한 시즌을 보내게 됐습니다. 남자 프로들의 고단한 떠돌이 생활은 기약없어 보입니다. 언제쯤이면 이들이 골프채를 다시 잡고 필드로 되돌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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