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는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꺼내 드는 비상대책이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민심을 얻지 못한 패자는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기 전까지 대책을 세우고 당명을 바꾸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새 정당’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하지만 비대위가 일상화하고, 말 그대로 비상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기구로 전락하기 쉽다 보니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부침이 잦은 것도 사실이다.
김종인 비대위는 주요 보수 정당 비대위로는 2000년 이후 8번째다. 2010년 6·2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하자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했다. 하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전까지인 ‘35일’짜리였다. 결국 시간에 쫓겨 당 쇄신 등 개혁 과제는 미봉책으로 끝났다.
2011년에는 두 차례나 비대위가 출범했다. 4·27 재·보선에 패배한 이후 정의화 비대위가, 10·26 재·보선 패배 뒤에는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다. 정의화 비대위에서는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 계파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 개혁과 쇄신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계파 갈등만 노골화됐다. ‘박근혜 비대위’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김종인·이상돈 전 의원 등을 영입하며 혁신했다. 이후 2012년 4월 총선,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6년 6월·12월, 2018년 7월 출범한 김희옥·인명진·김병준 비대위부터는 ‘당 외’ 인사들이 위원장을 맡아 개혁에 내세웠다. 계파를 초월해 실력으로 당의 DNA를 바꿔보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비대위는 전권을 부여받지 못한 채 친박-비박(비박근혜) 갈등에 휘말려 2달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당 이미지를 바꿔보고자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의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며 쇄신을 시도했으나, 역시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반발과 마주하며 3달 만에 종료됐다. ‘김병준 비대위’는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에서 연거푸 패배하며 들어섰다. 나름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정리하지 못한 채 황교안 대표 지도부에서 바통을 넘겼다가 이번 4·15 총선 참패를 초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5년 1월, 10월, 2006년 2월 세 차례 각각 임채정·정세균·유재건 비대위가 들어섰다. 2003년 11월 창당부터 2007년 8월 해산까지, 1년에 1번꼴로 비대위가 들어선 셈이다. 민주통합당 시절에도 2012년 총선 패배 후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가 위원장인 비대위 등이 꾸려졌지만 그해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문희상 비대위가 들어서 대선평가위원회와 정치형식위원회 등을 꾸리며 혁신을 시도했지만, 친문(친문재인), 비문(비문재인) 등 계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반쪽짜리에 그쳤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물러나며 ‘박영선 비대위’ 체제가 세워졌다. 비대위 이름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바꾸는 등 노력을 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실패하며 좌초됐다. 이후 다시 ‘문희상 비대위’가 세워져 박지원, 정세균, 박영선, 문재인, 인재근 등 핵심 계파 수장들이 비대위원으로 등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을 영입해 비대위를 꾸린 뒤 이해찬, 정청래 등 친노(친노무현) 후보들을 날리는 공천 개혁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꺼내 드는 비상대책이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민심을 얻지 못한 패자는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기 전까지 대책을 세우고 당명을 바꾸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새 정당’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하지만 비대위가 일상화하고, 말 그대로 비상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기구로 전락하기 쉽다 보니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부침이 잦은 것도 사실이다.
김종인 비대위는 주요 보수 정당 비대위로는 2000년 이후 8번째다. 2010년 6·2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하자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했다. 하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전까지인 ‘35일’짜리였다. 결국 시간에 쫓겨 당 쇄신 등 개혁 과제는 미봉책으로 끝났다.
2011년에는 두 차례나 비대위가 출범했다. 4·27 재·보선에 패배한 이후 정의화 비대위가, 10·26 재·보선 패배 뒤에는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다. 정의화 비대위에서는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 계파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 개혁과 쇄신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계파 갈등만 노골화됐다. ‘박근혜 비대위’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김종인·이상돈 전 의원 등을 영입하며 혁신했다. 이후 2012년 4월 총선, 12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6년 6월·12월, 2018년 7월 출범한 김희옥·인명진·김병준 비대위부터는 ‘당 외’ 인사들이 위원장을 맡아 개혁에 내세웠다. 계파를 초월해 실력으로 당의 DNA를 바꿔보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비대위는 전권을 부여받지 못한 채 친박-비박(비박근혜) 갈등에 휘말려 2달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당 이미지를 바꿔보고자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의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며 쇄신을 시도했으나, 역시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반발과 마주하며 3달 만에 종료됐다. ‘김병준 비대위’는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에서 연거푸 패배하며 들어섰다. 나름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정리하지 못한 채 황교안 대표 지도부에서 바통을 넘겼다가 이번 4·15 총선 참패를 초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시절인 2005년 1월, 10월, 2006년 2월 세 차례 각각 임채정·정세균·유재건 비대위가 들어섰다. 2003년 11월 창당부터 2007년 8월 해산까지, 1년에 1번꼴로 비대위가 들어선 셈이다. 민주통합당 시절에도 2012년 총선 패배 후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가 위원장인 비대위 등이 꾸려졌지만 그해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문희상 비대위가 들어서 대선평가위원회와 정치형식위원회 등을 꾸리며 혁신을 시도했지만, 친문(친문재인), 비문(비문재인) 등 계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반쪽짜리에 그쳤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물러나며 ‘박영선 비대위’ 체제가 세워졌다. 비대위 이름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바꾸는 등 노력을 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실패하며 좌초됐다. 이후 다시 ‘문희상 비대위’가 세워져 박지원, 정세균, 박영선, 문재인, 인재근 등 핵심 계파 수장들이 비대위원으로 등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을 영입해 비대위를 꾸린 뒤 이해찬, 정청래 등 친노(친노무현) 후보들을 날리는 공천 개혁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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