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100) 예비역 대장을 사후(死後)에까지 욕보이려고 한다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백 장군 측은 “보훈처 직원들이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총선 전에 국립묘지법 개정 관련 설문을 돌렸고, (일부 여권에서) 개정을 추진 중인데, 법안이 통과되면 장군님이 현충원에 안장됐다가 뽑혀 나가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힌 것으로 조선일보가 27일 보도했다. ‘백 장군 묘역으로 현충원은 안 된다’는 의미로 들릴 만하다. 그것이 문재인 정권의 뜻인지부터 묻게 한다.

백 장군을 지난 13일 방문한 사실을 시인한 보훈처는 “뽑혀 나갈 수 있다는 발언은 한 적이 없고, 광복회가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상황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한 얘기”라고 주장하지만, 그대로 믿기 어렵다. 백 장군 측은 “평소 정부 측에서 별 연락이 없었는데 ‘청와대 요청 사항’이라며 국방부에서 장군님의 공적(功績)과 가족 사항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보훈처 직원 2명이 찾아왔다”고도 했다. 내용이 구체적이다. 꾸며서 말했을 개연성은 전무해 보인다. 국가기관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백 장군 공적을 청와대가 당사자에게 굳이 요청한 배경도 석연찮다. 보훈처 직원들이 “백 장군께서 돌아가시면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사실상 통보한 것도 마찬가지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 묘역에 빈자리가 없지만, 백 장군의 상징성이 큰 만큼 활용을 고려했던 국가유공자 묘역 안장마저 선을 그은 셈이다. 백 장군 측이 “가족들 모두 최악의 사태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잖아도 문 정권 일각은 백 장군을 ‘친일’로 몰아 매도해 왔다. 젊은 시절 일제 강점기에 간도특설대 복무를 트집 잡아 ‘훈장 박탈’ 궤변까지 공공연히 했다. 하지만 국군 창설에 참여하고,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생명선’이던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전투 지휘 등 그의 혁혁한 전공(戰功)은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긍지다. 그런 ‘구국의 영웅’ 백 장군의 묘소가 6·25전쟁의 호국 혼(魂)이 잠든 안식처로 조성한 현충원일 수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否定)이기도 하다. 문 정권은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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