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1년쯤 발간된 요하네스 스트라다누스의 저서 ‘새 발견(Nova Reperta)’의 속표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인쇄술·나침반·화약·시계·증류기·등자가 달린 말안장 발명 등 근대 세계를 고대로부터 구분 짓는 지식이 요약적으로 묘사돼 있다. 아래 사진은 1620년 발간된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기관(Novum Organum)’의 속표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후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통과해 입항하는 배를 묘사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1591년쯤 발간된 요하네스 스트라다누스의 저서 ‘새 발견(Nova Reperta)’의 속표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인쇄술·나침반·화약·시계·증류기·등자가 달린 말안장 발명 등 근대 세계를 고대로부터 구분 짓는 지식이 요약적으로 묘사돼 있다. 아래 사진은 1620년 발간된 프랜시스 베이컨의 ‘신기관(Novum Organum)’의 속표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후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통과해 입항하는 배를 묘사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 과학이라는 발명 / 데이비드 우튼 지음, 정태훈 옮김 / 김영사

과학에 점진적 발전은 없어
1572년 ‘신성’ 발견 당시부터
1704년 ‘광학’ 출간할 때까지
망원경·현미경 덕에 비약 발전

가설·이론·실험 용어도 정립
이어지는 산업혁명의 바탕 돼


토머스 쿤은 1962년 출간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발전이 “덜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의 변화”이자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단절적 변화를 연속적으로 겪는” 사건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절대 진리를 향해 한 발자국씩 걸음을 떼는 것이 아니라 “비연속적인” 발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과학사가는 이미 고대로부터 “과학적 활동”이 존재했으며, 사실상 ‘혁명’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우튼의 ‘과학이라는 발명’은 과학사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특히 17세기에 오늘의 세계를 둘러싼 ‘과학’이 “발명”됐다고 주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1572년과 1704년 사이다. 1572년은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가 신성을 발견한 해이고, 1704년은 그 유명한 아이작 뉴턴이 ‘광학’을 출간한 해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이 시기 태어난 “언어”들이다. “개념의 혁명은 언어의 혁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 과학자라는 말은 물론 사실, 가설, 이론, 실험, 법칙 등 “과학의 언어”들은 이 시기 그 의미가 정립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새로운 발견 혹은 발명은 존재했다. 특별히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의 “발견(discovery)”은 “신세계로부터 새로운 작물들과 새로운 동물들”의 유입을 가져왔고, 그것에 대한 관찰과 기록은 “구세계 자체가 새로운 눈으로 관찰”되는 계기가 됐다. 즉 지구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가에 대한 고민, 즉 과학적 사고라는 것이 이미 존재해온 셈이다. 이 토대 위에 17세기 과학이라는 발명은 인접 분야로 확대된다. 이를테면 원근법은 “기하학적 원리들을 회화 표현에 적용”하면서 새로운 예술사조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정교하게 인쇄된 도해들”은 해부학의 지평을 넓혀갔다.


보는 방식의 또 다른 변화는 망원경과 현미경 등 도구에서 시작됐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해상이나 육상 전투에 사용”하기보다 하늘을 관찰하는 데 사용했다. 갈릴레이에게 망원경은 “그 자체로 일종의 우주여행을 제공”하는 도구였고, 드넓은 우주를 보면서 그는 인간, 아니 스스로의 위치를 생각하기에 이른다. 망원경이 광활함을 통해 “인간 하찮음”을 보게 했다면, 현미경은 작은 세계를 통해 인간의 좌표를 더듬게 했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우리의 시야를 넓힘으로써 인공적인 도움이 없을 때의 인간 감각기관의 한계를 쉽게 인식하게 해줬다.”

그렇다고 17세기 발명되고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망원경과 현미경, 혹은 로버트 보일의 공기펌프, 뉴턴의 프리즘 등의 도구들이 과학혁명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과학사에서는 도구와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더 자세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저자가 3부 ‘지식 만들기’에서 자세하게 소개하는 사실(Fact), 실험(Experiment), 가설(Hypothesis)과 이론(Theory), 증거(Evidence)와 같은 ‘용어’와 그것이 담고 있는 ‘개념’이다. 이들 용어가 단순한 낱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압축”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전 시대까지는 ‘사실’이 당연의 세계였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를 기술하려는 시도”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의 세계가 다양한 도구를 통해 경험되고 증명되면서 기록하게 됐고, 그것이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과학이라는 세계의 밑바탕이 됐다. 언어와 개념을 배태한 17세기 과학혁명은 근대의 여명을 앞당겼고, 훗날 산업혁명의 뒷배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과학혁명이 배태한 산업혁명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8세기 후반이 아닌 18세기 초반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산업혁명의 도화선이라고 말하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실제로는 ‘발명’이 아니라 당대 기술을 융합·발전시킨 것이다. “새로운 과학 최초의 위대하고 실용적인 성취”는 1712년 토머스 뉴커먼이 만든 증기기관이다. 저자는 “1800년까지 오직 2200개의 증기기관이 영국에서 제작됐는데, 그중 3분의 2가 뉴커먼의 기관”이라고 지적한다. “인류의 능력을 ‘예상 밖으로’ 증폭”시킨 뉴커먼의 증기기관이야말로 산업혁명의 도화선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제목만 보면 ‘과학이라는 발명’은 과학사의 한 줄기, 즉 17세기 과학혁명이라는 명제만 부각시켜 보여준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고대 이래 과학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철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이라는 발명’은 과학의 창을 통해 본 세계사라고도 할 수 있다. 1016쪽, 4만3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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