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고 믿는 게 당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한국에서 강력한 팬덤을 지닌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2018년 신작 ‘기억’의 첫 문장이다. 책을 여는 이 문장에 작가의 문제의식과 이 소설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우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고 기억의 많은 부분은 무의식의 영역에 잠겨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무의식은 단순한 무의식이 아니라, 바로 전생에 대한 망각이다.
소설에서 베르베르는 사람들의 한 생은 “부정적인 지난 경험에 대한 반(反)작용적 소원의 실현 과정”으로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번 생은 전생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렇게 우리는 보완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한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생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소설의 본격적인 줄거리는 이제까지 무려 111개의 전생을 산 뒤 현재 112번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르네 툴레다노의 전생 탐험 여행담으로 펼쳐진다.
이야기는 어느 날 르네가 센강 유람선 공연장 ‘판도라의 상자’에 갔다가 퇴행 최면의 대상자로 선택되면서 시작한다. 최면에 성공한 그는 자신의 무의식 세계 깊숙이 내려가 자신의 전생을 구경하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보게 된 전생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삶이다. 이어 여러 번의 최면으로 다양한 전생을 돌아보던 그는 결국 제일 첫 번째 전생, 그라는 존재를 출발시킨 첫 번째 전생을 찾아간다. 바로 1만2000년 전, 현대인이 아틀란티스라고 부르는 전설 속의 섬에 사는 남자 게브이다. 아틀란티스가 바닷속에 잠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르네는 어떻게든 게브를 구하고 싶어 하고,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게브와의 소통을 통해 그 세계에 개입하게 된다.
이렇게 소설에서 전생은 단순히 ‘이전 삶’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구성하는 전사(前史)이고, 동시에 현재는 시간을 거슬러 전생에 개입한다. 일종의 뫼비우스 띠처럼 열결된 구조다. 이는 한 개인의 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전체에 대한 비유이자 은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억은 현재의 재료로, 기억돼야만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르네의 전생 탐험과 지금의 르네 삶을 교차해 나가면서 사이사이에 기억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 전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다. 100번이 넘는 전생을 산 사람이라는 기발한 착상, 상상력을 뻗어내는 이야기가 베르베르답고, 기억과 무의식을 여러 개의 방문이 있는 복도로 그려내는 등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는 여전하다. 다만 이야기는 종횡무진, 자유롭게 풀려나가지만, 그렇게 촘촘하지는 않다. 400쪽, 1만4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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