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탑골공원
독립외침 들리는 듯해 가보니
코로나 때문에 문 닫혀 있어
어르신에겐 배려일지 아닐지…
개성적 전성기 보냈을 그들
늙으니 모두 다 외로운 모습
멋진 고목처럼 늙을순 없을까
독립외침 들리는 듯해 가보니 코로나 때문에 문 닫혀 있어 어르신에겐 배려일지 아닐지… 개성적 전성기 보냈을 그들 늙으니 모두 다 외로운 모습 멋진 고목처럼 늙을순 없을까
수없이 지나다니는 탑골공원에 아직 한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 그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 좀 뜻밖이다 싶다. 나뿐 아니라 며칠 전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곳의 노인들 때문이다. 하루하루 노화를 실감하고 있지만, 당당해야 한다는 자의식과는 달리 인간은 노화를 치명적인 약점으로 느끼고 있다. 노화란 멋진 고목 같은 것이 아니라 삭아서 쓰러지는 고향집처럼 가혹한 것이다. 한 인간이 전성기에 가정과 사회를 위해 어떻게 살아왔든 그것은 쉽게 잊히고, 그는 오직 눈앞의 늙은 사람일 뿐이다.
인간의 한평생을 생각하면 노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안쓰럽다. 더구나 탑골공원과 관련된 추문에는 늘 돗자리와 여자들이 등장하곤 했으니 일절 발길을 하지 않는 노인도 많을 것 같다. 가정의 달인 요즘, 탑골공원에 간 적 있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내게 노인들은 하나같이 경이롭다. 그들이 여유로워야 할 삶의 끝자락에서 혹독한 고독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내 인생의 가장 황당한 언쟁은 건강보험 징수액 때문에 시작됐다. 너무도 오랫동안 나는 수입의 20%에 육박하는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접시 물 같은 수입이 창피해 묵인하기를 여러 해. 한편으론 공정한 근거가 있을 거라 생각됐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 그렇게 느끼는 거라며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불쑥불쑥 “건강보험료 때문에 우리 국민이 봉기하지 않는 게 이상도 하지”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맞장구를 치거나 동의하는 사람이 1명도 없었을 때 뭔가가 잘못됐음을 알아챘어야 했다.
그러던 중 보험료는 더 엄청난 비율로 올랐다. 결국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항의했고, “잘못된 것이 없다”는 담당자의 기계적인 말만 계속 들었다. 드디어 내 목소리는 내 귀에도 낯설 정도로 우렁차졌다. 여러 차례의 언쟁 끝에 그는 보험료 징수는 적법하다며 먼저 세무서에다 문의해 보라고 했다. 나는 더 격분했다. “그건 보험료를 잘못 징수하는 당신들이 알아볼 일!”이라며. 그런 싸움에 이력이 났을 그는 세무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왜 그런 일이 하필 내게 일어났던 것일까. 수입이 너무도 적기 때문에 안전지대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수입이 많을 거라 생각해 그 정도는 표도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억울했지만 나는 기업 윤리를 가장 청명하게 내세우는 한 곳에 연락해 그해 신고한 400만 원만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까이 지내는 몇몇은 알고 넘어간 일이라 소문이 돌았는지 그다음 해부터는 그런 일이 일절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해마다 종합소득세 자진 신고 기간이 되면 반드시 세무서를 방문한다.
우리 집에서 세무서까지는 느긋하게 걸어서 30분 거리. 봄이 여름에 밀려나는 것을 보며 세종로를 가로질러 세무서로 가는 길에는 꽤 볼거리가 있어 걷는 것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내게 지루한 길이란 없는 것도 같다. 5월, 자연의 속도는 엄청 빨라서 눈앞의 녹색이 등 뒤에서 짙어진다.
전철역 출입구마다 노인들이 지팡이를 손에 들고 나란히 앉아 있다. 하나하나 개성적인 삶을 살아왔을 사람들이 늙었다는 이유로 똑같아 보이는 기현상에 나는 또 놀란다. 혼자만의 삶에도 자주 휘청대는 내가 뚜렷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아왔을 저들의 삶을 헤아리고 있으려니, 감정이 이입된 걸음이 무거워진다.
오늘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탑골공원으로 왔지만, 문이 닫혀 있다. 이번 달 초부터 도서관이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웬만한 야외 공공장소가 개방됐다는 말을 들었건만. 전염병에 약한 노인을 배려한 탓일까? 혹은 배려하지 않은 탓일까? 문틈으로 공원 안을 들여다본다. 3·1운동 때 학생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는 팔각정이 가까이 보인다. 손병희 선생 동상도 보인다.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가 있는 공원은 넓을 리 없지만 한 걸음도 떼지 못한 나는 한곳에 서서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듯한 피로감을 느낀다.
탑골공원을 등지자 그곳이 생의 큰 반전이 됐거나 그 근처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된 채 떠오른다. 너무도 드라마틱해 비현실적으로 들리던 역사 속 개개인의 애틋한 삶이 머릿속에서 밀반죽 덩어리처럼 부풀어 오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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