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호(왼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26일 문화일보에서 공정의 의미와 과제, 대안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김호웅 기자
김석호(왼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26일 문화일보에서 공정의 의미와 과제, 대안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김호웅 기자

임동균 “모든 사회적 문제가 교육에 집약, 창의적 대안 내놔야”


■ 대담 참석자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교수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교수

사회 = 손기은 기자


공정이 시대의 화두다. 사람들은 반칙과 특권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울분을 느끼고 있다. 특히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는 진영 논리에 따라 위선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불공정 세력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지난해 교육 불공정 문제 등이 극명하게 드러난 ‘조국 사태’와 시민단체의 불공정성을 한눈에 보여준 최근의 ‘윤미향 사태’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왜 불공정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공정의 가치가 2020년 우리나라에 어떤 의미인지, 대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김석호(48)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공정성연구회 총괄), 임동균(4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지난달 26일 문화일보에서 대담을 나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공정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경쟁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퍼지면 사회가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교육 불공정성에 대해 “입시문제를 손본다고 해서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정책 결정자들이 ‘인지적 해방’이라는 개념을 갖고,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공정 연구 분야 권위자로, 문화일보와 함께 지난 5개월간 ‘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를 본지 지면에 게재했다. 이날 사회는 손기은 기자가 맡았다.

◇공정 가치 부각 이유

△손 기자 = 공정과 공정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또 이 두 개념은 어떻게 다릅니까. 또 공정은 실재하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김 교수 = 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르면, 공정은 ‘공평과 정의의 원칙이 인간의 삶에 실현되는 정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공정이 실재하는 것이냐에 대해선, 그것이 실재해서 우리의 삶의 방식이라든가 사고를 실질적으로 제어하는 ‘사회적 사실’이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것은 ‘공정성’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공정한지에 대한 인식, 즉 뭔가가 잘못됐는지 불공정한지에 대한 평가로 봐야 하죠. 또 ‘공정하다’라는 것은 문화적 맥락과 시대, 상황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어떤 맥락에서 굉장히 공정했던 제도, 절차, 행위, 결정 등이 시간이 지나고 맥락이 변하면서 불공정한 행위, 흔히 얘기하는 적폐가 되기도 합니다. 현시점에서는 실재하는 공정보다, 인식하는 공정이 더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 교수 = 공정이라는 것은 보통 ‘fairness’로 이야기합니다. 능력이나 기여 정도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는 것이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의 공정을 말할 때는 훨씬 포괄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과정에서 부당함이 없었는지, 최종 분배 결과에 부당함이 없었는지 등이 포함되죠.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공정한지를 판단할 때는 단일 기준 차원에서 이야기가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그것과 관련된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정의 감각들이 혼재돼 평가가 이뤄진다고 봐야죠. 공정한지를 따질 때는 능력이나 기여에 따라 분배가 잘 이뤄졌느냐는 차원을 넘어 총체적인 수준에서 정의가 훼손되지 않았는지, 내가 어떤 시스템에 놓여있을 때 그 시스템을 바꾸기 힘들다는 인식이 들지는 않았는지 등을 따집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공정성 논의는 한국 사회와 현실이 얼마나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와 관련돼 있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손 기자 = 최근 공정 가치가 왜 이렇게 부각되고 시대적 화두가 된 것일까요.

△임 교수 = 한국 근현대사는 그동안 준전시 상황 비슷하게 압축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이 시기 공정은 사람들이 우선시하는 과제가 될 수 없었죠. 대신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시기였죠. 그런데 이 같은 준전시 상황이 끝나면서 등한시되던 공정의 가치가 급격하게 떠오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집단주의적이고 수직적인 가치들이 잘 활용되다가 갑자기 폐기되고, 그동안 억눌려왔던 사람들의 공정성이라는 화두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사회적으로 공정 가치에 상당히 민감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김 교수=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는 경제적 여유가 생긴 한국인들이 여전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는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했어요. 수월성이 끊임없이 강조되다 보니 항상 이겨야 하고 최고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끊임없는 경쟁이 일종의 일반적인 가치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문화에서는 경쟁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퍼지면 사회가 무너져요. 이런 면에서 경쟁을 끊임없이 하는 20·30대가 왜 그렇게 공정 가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에요.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명성이 반드시 전제돼야 합니다. 내가 시험에서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어떤 일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합니다.

◇교육 공정성

△손 기자 =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내세운 게 ‘시작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입니다. 입장마다 판단이 다르고 이 구호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있지만, 다수 국민이 이 구호 자체에는 동의하며 지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김 교수 = 정치인의 레토릭(수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현실이 이렇거나, 이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출발선이 같은 게 공정하다’고 이야기하는데, 현실적으로 출발선이 같기가 힘듭니다. 다 알고 있죠. 결과적 능력의 차이를 있게 한 과정의 차이를 봐야 합니다. 가령 교육의 질, 투자의 정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회 공정’에 대한 인식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것’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상적인 수준에서 공정 인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손 기자 = 조국 사태가 정시 확대로 귀결됐는데 이 결과도 공정에 대한 피상적 인식이 영향을 줬다고 봐도 될까요.

△김 교수 =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논리적 연결이 다 끊겨 있죠. ‘논리적 비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는데, 이 사람들(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은 어떤 제도가 됐든 간에 자신의 위치와 지위, 인맥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실제 많은 교육 전문가가 정시확대를 한다고 해서 사회 불평등에 따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부와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정도가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고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시험을 봤을 때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을 공정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 같은 논리적 귀결을 가지고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손 기자 = 그렇다면 교육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임 교수 = 교육 문제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집약돼 있어요. 문제의 핵심은 교육의 문제라는 게 교육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단순히 입시문제를 손본다고 해서 교육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의 배분이 어떻게 이뤄지는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죠. 어쩌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정책 결정자들이 ‘인지적 해방’이라는 개념을 갖고,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김 교수 = 사람의 모습이 다 다르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크기도 다 다릅니다. 기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데 포인트를 두지 말고 기회를 다양하게 주는 데 정책 초점이 가야 해요. 고시를 통과한 고위 공무원, 대기업 직원, 언론인 등이 목표가 되는 사회가 아닌, 삶의 경로가 다양한 사회로 만들 필요가 있어요. 이를 위해 경쟁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음 기회가 보장돼야 합니다.

△손 기자 = 불공정 감정이 쌓이다 보니, 행복감은 갈수록 줄고 울분만 쌓이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임 교수 = 한국 사회는 전형적으로 ‘사회적 시그널’에 민감한 사회라고 볼 수 있어요. 조금 더 건조하게 표현하면, 서로가 서로를 많이 쳐다보는 사회예요. 행동의 방향성을 결정할 때 다른 사람들을 많이 쳐다보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이런 게 유행이다’ ‘보통 이걸 많이 한다’ ‘보통 이런 것은 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죠. 이렇게 다른 사람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면 행복지수가 높기 힘듭니다. 남들 가는 대학이나 기업을 가야 하는데, 모두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윤미향 사태

△손 기자 = 최근에는 윤미향 사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민 단체 전반의 불공정성에 대한 목소리도 큽니다.

△임 교수 = 조국 사태나 윤미향 사태를 거치면서 흥미로웠던 점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지형에서 이 일들이 벌어졌죠. 기존의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 하에서 이 사건을 해석했을 텐데, 아마 복잡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대개 진보가 깨끗하고 도덕적이라고 인식했을 텐데 두 사건은 이런 이분법적 구분을 허물었습니다. 진보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흔들어 놓은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 = 시민단체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많이 했을 것입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과 청소년들의 참여로 이뤄지는 단체조차 실제로는 시민들이 그 단체의 운영, 운동 방향, 결정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 다 드러났죠. 결국에는 시민 사회가 매우 엘리트 중심적이었고 시민 사회에서 실제 시민은 없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시민 사회는 시민이 아닌 시민 단체의 사회라고 할 수 있고 그 시민 단체는 지금까지 시민을 바라본 것이 아닌 기업과 정치권력을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세대 갈등

△손 기자 = 세대 갈등 이야기를 해볼까요.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되려면, ‘사회 이동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대 갈등도 다소 줄어들 것이고요.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는 부모 지위가 그대로 자녀에게 이전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임 교수 =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이동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은 아닙니다. 문제는 소득 1분위의 경제적 안정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교육과 취업에 있어 불공정에 민감해하고 분노하는 이유도 자기가 상류층이 되지 못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 아니라 하위층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거든요. 하위층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중산층들도 어마어마하게 갖고 있어요.

△김 교수 = 모든 복지가 가족 중심으로 돼 있는 게 문제입니다. 돈 버는 자녀가 있는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죠. 복지와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가족·가구 중심이에요. 이건 국가가 저소득층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있어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해야 하지만 그 전에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젠더 갈등

△손 기자 = 젠더 갈등도 커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체계적 차별을 여전히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남성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받아치는 양상입니다.

△김 교수 = 여성은 출산·육아 문제와 맞물려 결혼하면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이 큽니다. 남성들은 경력 단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죠. 여성들이 불공정하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다 보니 여성들이 직장 내 공정에 대한 희망과 기대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죠. 출산을 많이 하면 회사에서 인정 안 해 줍니다. 오히려 불이익을 주죠.

△임 교수 = 저는 지금 20대 남성이 안쓰럽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대변되지 못하는 존재예요. 목소리를 표출할 창구가 없어요. 그래도 20대 여성은 목소리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됩니다. 그런데 20대 남성의 말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대 남성은 이 상황 자체에 울분이 쌓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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