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과 침묵 더 이상 안 통해 韓·中 건전한 관계 재설정 기회 헷갈릴 땐 오랜 친구 동행해야
미국과 중국 간에 신(新)냉전의 서막이 올랐다. 백악관은 지난 5월 21일 자 ‘대(對)중국 전략적 접근 보고서’에서 지난 40년간 중국이 미국의 핵심 국익을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비난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질서 수호를 위한 동맹과 우방의 공동전선 대열 참여를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2017년 12월 중국을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수정주의자이자 적대적 경쟁자로 지적한 바 있다.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론 공방을 계기로 정치·경제·무역·군사·인권·과학기술 등 전 분야에서 양국 간 정면 대결로 치닫고 있다. 그 결과 홍콩보안법 제정에 맞서 홍콩 특별지위 박탈 절차에 돌입하고, 위구르 인권 탄압 제재 법안을 진행 중이며, 대만에 무기 판매를 통한 군사 지원 등 조치를 했다. 또한, 중국 유학생 입국 제한 및 수학 중인 중국 유학생 추방, 무역 관세 재부과 등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역내 전략자산 전개 훈련도 이어지고 서해·남중국해·동중국해 및 대만해협 등에서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아시아 안보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타국에 대한 압박과 보복의 도구로 악용되고, 한국·호주·일본 등에 무역과 관광 부문에서 부당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욱이 미국은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 인도·태평양전략(IPS)을 강하게 추진할 뜻을 비치며 일대일로와 충돌하면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중국과 노골적 줄 세우기 경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6월 말 주최 예정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9월로 연기하고, 중국 문제 토의를 위해 한국·호주·인도·러시아 등을 신규로 초청한다고 한다. 특히, 한국과 호주 등 동맹국을 특정해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내 강한 반중(反中) 정서는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중국도 정면 반격 중이며, 심지어 미국의 목표가 중국 공산당 통치 종식이므로 군사적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하자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물러서지 않는 한 신냉전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미국이 최근 흑백 인종 문제로 큰 혼란 속에 있으며, 특히 국제사회에서 반다자주의적 행태로 지도력을 상실해 가면서 동맹과 우방의 불안과 불만을 자아내고 있고, 중국은 홍콩 사례에서 보듯이 패권적·반민주적 행태로 글로벌 리더의 자격과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를 선택의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선택의 딜레마는 가치와 이익이 현저히 충돌하는 데서 생긴다. 또한, 대외 의존도가 높고 분단의 취약점도 안고 있다. 하지만 등거리 외교나 전략적 모호성 유지 또는 소극적 침묵 등은 제대로 된 해답이 아니다. 양측의 거센 압박을 버텨낼 역량도 부족할뿐더러 우리는 중립국이 아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선 비상한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공급망을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 탈동조화(decoupling)를 추구하는 서방의 사례는 사드(THAAD) 배치로 인해 경제와 관광 분야에서 보복당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중국과의 운명공동체론도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파기한 뒤에나 가능한 무모한 발상이다. 중국은 힘과 명분에 있어 수세적인 상황이고, 코로나19 책임론과 홍콩보안법 강행으로 국제적인 지지도도 최악인 현실이다.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하반기 방한 추진을 계기로 중국과 상호주의와 공정한 다자주의에 입각한 동등하고 건전한 관계 설정을 지향하되, 열린 마음으로 일대일로에 참여 가능한 부문이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에 비해 미국 측의 IPS와 EPN 참여 요청을 거부할 경우 전략적 손실을 고려컨대 국익 차원에서 적극적인 검토가 바람직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를 때는 오랜 친구를 따르라는 속담이 있다.
신냉전은 비핵화의 추동력을 떨어뜨리고 중국과의 공조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주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 상태에서 운영한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여기에 대고 5·24 대북 제재 조치가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통일부의 발표는 동맹 강화와 비핵화 노력에 역행하는 자해행위다. 담장이 왜 세워졌는지 모르면 부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