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선 ‘흼’만이 色이고
백인만이 인간으로 인식
‘흰색’의 시각적 재현 추적
사진·영화의 조명조차
백인 위해 발전했다 폭로
韓서 자리잡은 미백효과
자칫 ‘인종주의’ 될까 경고
1985년 가을, 영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국은 방청객을 앉혀 놓고 토론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었다. 방청석 앞줄에는 흑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프로듀서가 무대 매니저한테 불쑥 말한다.
“너무 ‘다운’돼 보이잖아요.”
인종 문제 탓에 일어난 길거리 폭동 문제를 다루려는 토론이었다. 무대 매니저는 화면상에서 관객의 인종적 구성을 균형을 맞추자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프로듀서가 제기한 것은 미학의 문제였다. 화면이 너무 “다운돼 보인다는 것, 즉 지루하고 거무튀튀하고 생기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흑인이 앞줄에 뭉쳐 있는 한, 일반적 촬영 기술로는 화면의 칙칙한 이미지를 바꿀 수 없었다. 방송국 카메라는 ‘검은색’을 밝고 생기 있게 보이도록 찍는 법을 아예 알지 못했다.
영국의 영화학자 리처드 다이어의 ‘화이트’에 따르면, 회화·사진·영화·텔레비전·광고 등 서구의 시각 미디어는 “백인의 피부를 아름답게 조명”하는 법은 알지만 흑인이나 아시아인 같은 다른 인종에 속한 인물들을 “돋보이게 찍는 법”은 모른다.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시각 문화는 “‘화이트’라는 개념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장치로서 “백인의 인종주의적 우월성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작동 중인 까닭이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의 서사가 “백인 남성을 인류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백인 여성을 숭고함을 유지하는 역할을 부여”해 왔다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다. 백인은 신의 축복을 받는 존재이고, 오염 없는 순수의 상징이며, 일체의 어두운 악을 무찌르는 영웅의 표상이다. 이 책은 서구 문화가 흰색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재현해 왔는지를 추적하면서 백인의 이미지는 자명하다기보다 기독교·인종·제국주의의 맥락에 따라 문화적으로 구성됐다고 말한다. 가령, 타잔, 람보, 코난 등의 하얀 근육질 나체는 타고난 것(야만)이 아니라 보디빌딩 같은 계획적 성취(문명)의 결과이며, 이로써 식민지의 밀림 속을 헤집고 다니는 제국주의적 진취성의 상징이 된다. 이 책의 진정한 독창성은 “빛의 미디어”인 사진과 영화의 기술 자체가 어떻게 “백인의 얼굴”을 특권화해 왔는지를 폭로한 데 있다.
서구 문화에서 흰색은 색깔이 아니다. 모든 색깔의 합, 즉 색깔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흑인은 흑인이고 아시아인은 아시아인이지만, 백인은 인간이다. 백인은 인간 전체를 포용하며, 하늘의 빛처럼 밝고 선한 존재다. 나머지는 모자라거나 부족하거나 사악한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인종적 편견은 사진, 영화, 드라마 등 서구의 시각 문화에서 기술적으로 고스란히 재현된다.
사진은 보통 하얀 종이에 인쇄되고, 영화는 하얀 배경 위에 투사된다. 흰색 위에서만 사물의 형태와 색깔이 온전히 표현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백인 중의 백인’인 북구의 코카서스 화가들이 포착한 ‘빛처럼 투명한 아름다움’은 미적 실천에서 도덕 실천으로 쉽게 전치된다. 광인, 죄인, 원주민 등은 흐릿하게, 천사, 요정, 성인은 선명하게 표현된다. 중산층 백인 여성은 밝고 하얗게 묘사되는 반면, 빈민·노동자·이민자 남성은 어둡고 광나지 않는 혼탁한 이미지로 보이는 것이다.
백인들이 적절히 재현하기 원하는 산뜻한 피부 톤, 즉 “흰색의 더 하얀 색조”를 표현하려면, 두꺼운 메이크업, 충분한 강도의 조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다른 색들은 모두 과도하게 밝고 촌스럽게 변질된다. 이러한 이미지 환경에서는 유색인이 도저히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에서 나타나듯, 흑인을 ‘적절히’ 찍으려면 빛은 더 따스하고, 온도는 더 낮고, 은색이 아니라 금색 반사판을 사용하고, 필름은 더 높은 채도를 지녀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의 논의를 이어받아 과감히 말하면, 인종주의 사진이나 영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진이나 영화 자체가 일종의 인종주의다. 영상을 찍기 직전에 전문가들이 하얀 종이를 들고 ‘화이트’로 기준을 잡는 것을 흔히 보는데 그 자체가 인종주의 실천이다. “흰색 바탕 위에서 실재가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백인을 더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흰 피부를 가진 백인과 선을 상징하는 빛 사이의 특별한 친밀성을 제시하는 효과를 낳는다.
서구 인간성의 최고 체현인 예수는 흔히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재현되고, “머리와 수염은 햇빛의 색”, 눈은 “하늘의 색”인 것으로 그려진다. 이른바 ‘금발에 파란 눈’이다. 영화도 이를 이어받는다. 오버헤드 조명은 필수다. 피부는 빛을 그대로 흡수한 듯, 은은히 빛나야 한다. 더 희게 보이되 빛을 반사해 번들대지 않도록, 파우더나 크림 등이 있어야 한다. 의상도 백인 여성의 피부에 맞춰진다. 절정에 달한 흼(whiteness)을 사진에서 드러낼 수 있는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대표적이다. 에드먼드 스펜서의 시처럼, “최고의 처녀처럼 보이게 하얀 옷을 입었다. (중략) 당신은 분명 그녀가 천사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진이나 영화를 둘러싼 온갖 장치는 인간을 천사로 만든다. 단, 피부색이 흰색인 것이 조건이다.
이 책의 역자는 한국 속에 이미 뿌리박은 미백(美白) 현상을 경계한다. K-팝 등 한류 문화 콘텐츠 속의 요정들이 우리 자신 안에 내화된 백인성의 표현이고, 자칫 ‘인종주의’ ‘피부색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귀담아들을 만한 의견이다. 430쪽, 2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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