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의 노래는 실내악으로 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사이에 꽃과 나무가 협연하는 계절은 거의 지나버렸다. 사진과 영상으로 멀리서 봄을 봐야 했던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람의 마음일 뿐, 식물들은 인적이 뜸한 사이에 더 열심히 자라고 뿌리 내렸다. 출입 금지 조치가 내려진 세계의 수많은 공원과 정원에서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들은 해방의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커다란 정원’은 외출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안심하고 상상의 수풀을 거닐 수 있게 해주는 상상의 산책 같은 그림책이다. 2017년 볼로냐도서전 북앤드시드 부문에서 라가치상을 받았던 이 책이 2020년의 봄에 이런 고마운 역할을 맡게 될 줄은 작가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 질 클레망은 이른바 정원의 장인으로 식물학과 곤충학을 연구하면서 조경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는 원예학자다. 그는 정원에 대해 말하는 열두 편의 서정적인 글을 썼고 뱅상 그라베는 각 편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나타냈다. 가로 길이 80㎝가 넘는 넉넉한 화폭에 사계절 정원의 모습이 가득 채워져 있다. 두툼한 표지에 책등을 초록색 패브릭으로 감싸고 제본선의 구부러짐이 없는 특수제본 방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펼치면 완전한 평면이 된다. 책을 읽는다기보다 책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와 콜린이 땅속에 묻어둔 열쇠를 꺼내 들던 순간처럼 독자는 이 커다란 책을 여는 순간 자연이라는 거대한 정원의 아름다움을 실감한다. 걸리버 여행기에 식물의 왕국편이 있다면 마치 이런 풍경일 테다. 꽃과 벌레가 주인이며 독자는 작은 몸집의 정원사가 돼 얌전한 걸음으로 일거리를 챙긴다.
열두 달 그림책이지만 5월에 이야기를 시작해 3월의 부활을 정점으로 한 후 4월에 끝난다. 이 구성은 서구 기독교 문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활짝 핀 꽃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정원의 활기를 간직한 채 책을 덮게 하는 장점이 크다. “정성껏 돌본다는 것은 자연에서 늘 일어나는 일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날마다 배우고 깨닫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라는 클레망의 글귀는 지금의 우리가 새겨들을 말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파 뿌리가 딸기를 좋아해서 그 방향으로 자란다거나, 평생을 땅속에서만 사는 버섯이 있다는 진귀한 비밀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늦은 개학을 기다려준 어린이에게 선물하기 좋은 그림책이다. 장면마다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 숨어 있다. 40쪽, 3만9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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