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문화부장

숏폼(short-form)의 시대, 짧으면 몇 초짜리 길어도 10분 이내 ‘숏폼 콘텐츠’가 대세다. 중국 플랫폼 틱톡이 주도권을 잡은 이 시장에 유튜브 등 글로벌 업체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번 주엔 스트리밍 시대 1인자 넷플릭스도 숏폼 진입을 선언했다. 넷플릭스는 15분 안팎의 오리지널 콘텐츠 등 다양한 숏폼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조금만 길어도 견딜 수 없고, 아무리 의미 있어도 설명은 사양하는 세대의 전면적인 완승이다.

콘텐츠의 스펙트럼에서 숏폼의 반대편 자리라면 책이지 않을까 짐작해 보지만 책도 큰 흐름의 자장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주 한 인터넷 서점이 내놓은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보고서를 보면 ‘갈수록 짧아지는’ 시대의 흐름이 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상반기 베스트셀러 트렌드로 슬기로운 집콕생활, 고전의 재발견, 팬덤셀러와 함께 ‘한 줄 교양’을 꼽았다.

‘한 줄 교양’, 말 그대로 방대한 양의 지식을 한 줄 혹은 한 페이지에 짧게 담아낸 책이다. 예를 들어 역사,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365일 동안 읽을 수 있게 만든 책, 인생의 문장 100개를 한 권에 담은 책, 하루 한 질문 형식으로 정보와 지식을 요약한 책들이다. 책은 제각각의 역할과 즐거움이 있기에 ‘좋다’ ‘나쁘다’로 잘라 말할 수 없고, 통속잡지 속 한 문장이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기도 하지만 교양은 한 줄로 얻어질 수 없다. 우리 시대 교양에 대해 뛰어난 통찰을 안기는 독일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교양은 호기심에서 시작해 세상과 대적하며 혼자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가장 좋은 방법은 깊은 책 읽기라고 말한 바 있다.

분명한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짧아지고 얕아지는 숏폼 시대, 책 읽기도 이 속성을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독서야말로 인류가 만든 가장 기적적인 발명품”이라고 주장해 독서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이뤄낸 인지 신경학자 매리언 울프는 “디지털 매체를 많이 읽을수록 우리 뇌 회로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뇌의 가소성으로 인쇄물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를 대하듯 단어를 건너뛰고, 이런 문장에 길들다 보면 깊이 읽기가 주는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다.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은 그의 우려가 이미 오래전 현실이 돼 있음을 보여준다.

매리언 울프는 책 ‘다시 책으로’에서 순간 접속의 시대, 우리의 뇌 읽기 회로가 망가져 ‘깊이 읽기’ 능력을 잃어버리는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는 자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어린 시절 크게 영향받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으려 했지만,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진 뇌가 더 이상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깊이와 성찰의 실종, 문해력의 추락…. 울프만의 일이겠는가. 이번 주말 오래전 큰 영향을 받은 ‘인생의 책’을 꺼내 보려 한다. 그 책을 읽으며 오늘도 10분짜리 동영상조차 지루해 참지 못하고 건너뛰는 우리 자신과 시대를 생각하는 일, 그 변화를 생각해보는 일, 아마도 여전히 사회적 거리가 필요한 코로나 시대를 가장 잘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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