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보안법 갈등 이면엔 美·中 ‘경제 패권다툼’
홍콩증시서 中기업 비중 60%
37년째 달러 페그제 유지 영향
美·中 모두 경제적 이득보지만
이념갈등에 홍콩은 희생양으로
美, 홍콩 특별지위박탈 강행땐
환투기세력 공세로 혼란 불보듯
중계무역 의존 韓경제도 불똥
당장 미·중은 홍콩을 놓고 ‘화폐 전쟁’부터 벌일 태세다. 중국은 홍콩 달러의 고정 환율 제도인 ‘페그제’ 붕괴를 바라지만, 미국은 이를 유지해야 한다. 이 사이에서 홍콩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홍콩 시위 사태의 충격으로 2분기에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으며, 올해 1분기에는 -8.9%까지 추락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올해 성장률을 -15%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홍콩 주민들의 ‘엑시트(탈출)’까지 겹치면서 부동산 가치도 급락, 글로벌 금융시장은 향후 홍콩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시아 통상·금융 허브 지위, 흔들리나=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5년 전인 1992년 미국은 ‘홍콩 정책법’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홍콩은 중국과 구별되는 독립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홍콩 보안법이 제정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도 미국 정부는 중국에 25%에 달하는 추가관세를 매겼지만, 홍콩은 제외했다. 특히 민감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과 제품들도 거래할 수 있었다. 또 홍콩 사람들에게는 중국 본토 사람들과 달리 비자도 쉽게 내줬다. 홍콩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연간 15만 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홍콩은 중국과 다른 나라를 잇는 중계무역을 바탕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허브)로 성장했다. 대중국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70%는 홍콩을 거친다. 중국-홍콩 간에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맺어져 홍콩 기업은 더 쉽게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 역시 홍콩을 통해 해외에 진출하거나 자금을 유치했다. 글로벌 IB에 따르면 2010∼2018년 중국 기업은 홍콩 자본시장에서 주식의 73%, 채권의 60%의 자금을 조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1997년엔 홍콩 증시의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중국 기업의 비중이 20%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60%를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증시 상위 10대 기업 중 텐센트, 건설은행, 핑안보험 등 6개가 중국 기업이다. 미국도 홍콩 덕을 봤다. 홍콩은 지난해 기준 3040억 홍콩달러(약 47조7310억4000만 원)를 미국에 수출하고 2129억 홍콩달러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이 중에는 거래할 수 없거나, 관세나 통관상의 이유로 홍콩을 거치는 상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현재 홍콩에는 1300개 사에 달하는 미국기업이 있고 8만5000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다.
미국이 홍콩의 특혜를 박탈할 경우 글로벌 환(換)투기 세력이 페그제를 공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페그제는 환율이 고정돼 있어 수입품 가격이 변동하더라도 국내 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물가가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페그제로 통화 가치가 자국의 경제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국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돼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 경우 1987년 블랙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에도 홍콩 경제를 지켜낸 페그제가 오히려 홍콩을 찌르는 단검이 될 수 있다. 미국 역시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환투기에 대응, 미국 달러를 매각하기 시작하면 미국 채권가격이 급락(금리상승)하는 피해를 볼 수 있다. 홍콩의 외화 보유액이 3조4000억 홍콩달러에 이르며, 상당한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홍콩 본원 통화의 2배에 해당한다.
홍콩 페그제가 붕괴할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취약해진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우리나라도 홍콩과의 교역량과 금융시장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홍콩 이슈에 민감하다. 홍콩은 수출액이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국가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액도 70% 이상이 홍콩을 통해 이뤄진다. 또 우리나라는 홍콩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크다. 홍콩H지수를 기초로 주가연계증권(ELS) 잔액도 28조 원에 이른다. 홍콩 관련 ELS 잔액은 전체의 60%가 넘을 정도다.
■ 용어설명
페그제 :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특정 국가의 통화에 고정시켜두고, 정해진 환율로 교환을 약속한 고정환율제도다. 페그(peg)란 무언가를 고정한 ‘말뚝’ 또는 ‘못’이라는 의미가 있다. 19세기 영국 식민지에 적용된 제도였지만, 1994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점차 폐지됐다. 한국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폐지했으며, 중국도 2005년 포기했다. 현재 페그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홍콩, 말레이시아 등 소수에 불과하다.
박민철 기자 mindo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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