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일이 묘하게 흘러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경고 담화를 보내자 불과 4시간 만에 청와대가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대북 전단 살포는 “백해무익”이라 했고, 통일부는 “법률 정비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국방부는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 전광석화 반응을 보인 이유는 3가지일 것이다.

첫째, 2022년 3월 대선에 앞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을 공세적으로 드라이브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초조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올해는 교류 협력을 강화할 절호의 시기로, 각종 카드를 준비했으나 미국과 북한 간에 대화가 중단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남북관계는 동면 상태에 들어갔다.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북한의 대남 비난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 최고 수준으로, 당국은 난국을 돌파할 카드가 필요했다. 정부는 북한의 무반응보다는 압박이든 비난이든 대남 메시지가 필요한 실정이다. 둘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대북 제재와 상충됨에 따라 한계가 있지만, 전단 살포 금지는 미국 및 유엔의 제재와 상관없이 정부가 단독으로 결단해 북한에 호응할 수 있는 카드라고 판단했다. 셋째, 평양과 코드를 철저하게 맞추더라도, 4월 총선의 압승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복안이다.

남북 소통이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 김여정의 경고 담화와 청와대의 반응은 최근 북한의 도발 및 군의 대응과 비교해 매우 편향적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왜 김여정의 거친 경고처럼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않는가? 지난달 국방부는 북한의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에 대해선 9·19 군사합의 위반을 지적하기보다는 ‘우발적 총격’이라고 강변했다. 북한의 경고 사항은 곧바로 수용하고 우리가 지적해야 할 사안에는 침묵한다. 북한의 적반하장 태도에 끌려다니는 정부의 저자세는 대북 굴종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5월 7일 서북 도서 합동방어훈련이 보도되자마자 남측을 비난하는 북한 인민무력성의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민감 사안은 사전 협의를 거친다는 긴급 방침을 내놨다. 북한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속칭 ‘김여정 하명법’을 제정하고 평양의 심기를 살피는 행태는 ‘과도한 눈치 보기’다. 평양과 서울의 갑을 및 종속 관계가 고착되고 있다. 남측이 전단 살포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남북연락사무소를 폐지하고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는 대남사업 총책임자 김여정의 협박은 모순이다. 군사합의 이행으로 얻는 이득은 북측이 훨씬 크다. 이미 GP 총격으로 군사합의는 사실상 사문화했고, 경고는 도발의 명분 축적 목적일 것이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민간 활동에 9·19 군사합의를 적용하는 것은 법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북한이 전단 살포를 국제법에 준하는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해도 헌법 등 국내법이 먼저 적용된다. 여권에서 김여정의 경고를 “북측이 대화와 협상을 바라는 것 같다”고 자의적인 해석을 내놓자마자 북측은 남측이 나름의 헛된 개꿈을 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북의 안색을 살피고 ‘과잉 러브콜’을 보낸다고 원하는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남북 간에 최소한의 상호주의를 준수하고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때 역설적으로 교류 협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6·25전쟁 발발 이후 70년간의 남북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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