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력의 역설 | 애덤 카헤인 지음 │ 정지현 옮김 │ 메디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협상·과테말라 내전 종식…
전세계 누빈 갈등해결 전문가가 전하는 난제 해결법
‘상대방을 설득해야한다’는 집착은 갈등만 키울뿐
모두가 ‘부분이자 전체’ 이중적 존재 인정해야
만장일치로 확실한 길 찾으려는 논쟁보다
‘일단 가면서 길을 만든다’는 자세 필요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 정책) 철폐를 위한 국가적 협상에 들어갔을 때, 협상장 안에선 이런 농담이 돌았다. “심각한 국가적 문제에 부닥쳤을 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현실적인 선택’은 모두가 무릎 꿇고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 ‘기적적인 선택’은 다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힘을 모아 해법을 찾는 것보다 천사를 기다리는 게 현실적이라니. 농담 특유의 과장법이 내포돼 있지만, 이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협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협력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협력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협력에 대해 “당사자가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목적과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한 생각도 똑같아야 하며, 상대방을 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정은 틀렸다”는 것이다. 협력에 대한 잘못된 관념은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적화(敵化) 증후군’을 낳는다. 적은 항상 ‘남’이다. 그래서 유혹적이다. “나는 문제가 없고 눈앞의 문제도 내 책임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주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화, 악마화로는 갈등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 ‘네 탓’만 하면 갈등은 증폭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성의 공간은 더 줄어든다.
저자는 이런 ‘억압적 협력’에 집착하지 않는 게 문제 해결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협력이 아닌 분열이 갈등을 푸는, 그야말로 ‘협력의 역설’이다. 출발점은 정답이 하나밖에 없다는 가정을 폐기하는 것이다. “정답을 안다고 확신하면 타인의 답을 고려할 여지가 줄어들어 함께 일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믿음은 ‘나는 우월하고 너는 열등하다’는 논리를 낳고, 결과적으로 건설적인 협력이 아닌 퇴행적인 강제로 이어진다. 강제와 강제가 만나면 “피와 파괴”만 남는다. 단 하나의 정답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저자가 ‘스트레치(뻗기) 협력’이라고 부르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 스트레치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뤄진다.
첫째는 모두가 부분이자 전체인 이중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영국 작가 아서 케스틀러가 만든 ‘홀론(holon)’이라는 개념을 차용했다. 각자가 부분인 동시에 개별적인 욕망을 지닌 전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이해관계와 의견이 불일치하는 것은 당연시된다. 그러면 사실상 ‘나의 이익’의 다른 표현인 ‘전체의 이익’이라는 논리로 타인을 굴복시키고 조종하려는 유혹도 떨칠 수 있다. 두 번째 스트레치는 목적과 방법에 대한 만장일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일단 개방적 자세로 실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확실한 길’을 찾기 위해 논쟁하는 대신 ‘가면서 길을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 스트레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자신의 역할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남 탓을 하며 남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뭔지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와 입장, 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풀고 작게 수축한 자아를 더 크고 자유로운 자아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행 경험을 토대로 한 저자의 조언은 정치세력뿐 아니라 기업 간, 개인 간 갈등을 푸는 데 탁월한 지침이 될 만하다. 다만, 극단적 진영 대결이 횡행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조언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특히 정의의 문제에서 피해자에게 ‘당신도 옳고 남도 옳을 수 있다’ ‘당신도 변해야 한다’는 식의 상대주의적 해법을 제시하는 게 설득력이 있을까. 5·18 광주민주화운동 시 발포 책임 논란, 한·일 위안부 갈등 등 최근의 갈등 이슈는 카헤인식 처방을 수용하는 게 만만찮을 것임을 시사한다. 192쪽, 1만3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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