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지 웰트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에 있는 웰트 사옥에서 주력 제품인 스마트벨트를 펼쳐 보이며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 ‘스마트 벨트’ 웰트의 강성지 대표
허리띠로 과식·걸음·칼로리 측정 스마트 벨트 만든 의사 겸 사업가 “삼성전자 C랩 2년이 아니었으면 한낱 아이디어에 그쳤을 지 몰라”
“文대통령과 佛 방문 동행은 행운 S.T.뒤퐁과 디자인 협력 작업도”
“헬스케어와 IT의 접점을 만들어 대한민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산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
지난 2016년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니션호텔 내 샌즈 엑스포(Sands Expo). 매년 초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 박람회인 소비자가전쇼(CES)에서 각국 스타트업(창업초기 기업)들이 혁신기술을 소개하기 위해 샌즈 엑스포 내 ‘유레카 파크’에 모여들었다. 좁다란 통로를 지나 다닥다닥 붙어있는 스타트업들 사이에 자리잡은 삼성전자 C랩의 부스. 이곳에서 ‘웰트(WELT)’란 조그만 한국 스타트업이 ‘스마트벨트’로 이름 붙여진 제품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이는 허리둘레를 자동 측정해 과식 여부를 판단하고 걸음 수를 재 칼로리 소모량을 추정하는 웨어러블 기기다.
웰트는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인 C랩에서 싹을 틔웠다. 웰트는 회사명이자 스마트벨트의 제품 이름이기도 하다. 웰트는 강성지(34) 대표가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다. 그가 한 번의 실패와 두 번의 창업을 거쳐 만든 제품이기도 하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에 있는 웰트에서 만난 강 대표는 이력부터 독특했다. 그는 의사 출신 기업인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에서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마친 후 한 차례 창업을 거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첫 번째 실패는 첫 창업에서 맛봤다. 강 대표는 2012년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모티브앱’이라는 이름의 위치 기반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는 특정 장소를 찾아가 미션을 달성하면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4년 후 크게 유행한 게임 ‘포켓몬고’와 유사했다. 게임을 통해 사람들을 건강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해 보고 싶다는 게 창업 취지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 2년 만에 실패했다. 강 대표는 패인을 ‘재미없는 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첫 실패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으로는 소비자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의사와 공무원으로서 일할 때는 공급자 측면에서 시장을 바라봤습니다. 제가 아는 지식으로 소비자에게 가르치듯이 서비스를 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오만이었죠. 한마디로 소비자를 얕봤던 거죠. 만약 마흔 살까지 승승장구만 했다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 오만이었을 거예요. 기업가로서 지양해야 할 자세를 일찌감치 배운 건 큰 행운이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 삶에 물처럼 스며드는 서비스를 해야겠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첫 실패 경험은 또 다른 창업아이템으로 되살아났다. 고민의 출발점은 “사람들을 어떻게 거부감 없이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였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기능을 숨기듯이 넣은 제품을 차고 있으면 자연스레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때 착안한 것이 사람들이 많이 차고 있는 벨트였다.
지난 2018년 10월 15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 궁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초청 국빈 만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왼쪽부터) 프랑스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강성지 웰트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웰트 제공
첫 사업이 망한 채 창업 아이템만 손에 들고 있던 당시 강 대표에게 삼성전자가 입사 제의를 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에 헬스케어 개발팀이 만들어지면서 직원처럼 같이 일할 수 있는 의료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특채는 엄청난 행운이었어요. 삼성전자에서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 여러 가지 의견을 내고 참여할 기회를 잡는 것이니까요. 치열하게 일하고 열심히 성과를 만들어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직에 빌붙어 사는 것보다는 무슨 일이든 하다가 잘리는 게 낫다는 게 제 지론이었습니다. 회사를 나올 각오를 하고 삼성전자에 들어갔습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2년은 숨 가빴다. 삼성전자에 출근한 지 이튿날 사내 시스템에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배너가 떴다. 입사 전 고안한 아이디어인 ‘스마트벨트’로 바로 지원했다. 며칠 지나서 예선과 본선을 통과했다. 스마트벨트는 최종 경합 과정에서 경쟁률 1000대 1을 뚫고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우수 과제로 선택돼 C랩에 입성했다. C랩 아이디어로 채택되면 1년간 현업 부서에서 벗어나 팀 구성부터 예산 활용, 일정 관리까지 자율적으로 과제를 수행한다. 직급에 관계 없이 아이디어 제안자가 리더가 되고, 근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디어의 사업화에만 집중하게 된다. 스타트업 대상자들은 창업 이후 삼성전자의 역량과 네트워크, 각종 경영 노하우를 컨설팅 형식으로 지원받게 된다. 창업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재입사를 원할 경우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다.
강 대표는 당시 C랩에서 지원받은 자금으로 1년간 연구·개발(R&D) 과정을 거쳐 스마트벨트 ‘웰트’를 만들었다. 완제품이 만들어지자 미국 CES와 독일 국제가전박람회(IFA) 등에도 참여했다. 웰트는 2016년 C랩 출신 최초로 CES 전시회에 입성한 이래 4차례 CES에 참가했다. 2016년 6월에는 C랩 스핀오프 11호 기업으로 독립했다.
“C랩이 아니었다면 스마트벨트는 한낱 아이디어로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C랩에서 보낸 1년 동안 삼성전자를 오래 다녀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C랩에 참여할 때 5년 안에 역량을 키워서 독립할 생각을 품긴 했지만 2년 만에 삼성전자에서 분사할지는 몰랐습니다. C랩은 이미 ‘창업사관학교’로 자리잡았습니다. 노키아는 아무것도 못 한 채 무너졌지만 삼성전자의 C랩은 마치 버섯이 포자를 퍼뜨리듯이 벤처기업 수백 개를 키워냈습니다. 이들이 분사하면 삼성의 DNA가 산업계에 뿌려지는 거죠. 사회적인 책무를 넘어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겠다는 부채감을 느꼈어요.”
웰트는 ‘소비자들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웰트 스마트벨트는 현재까지 2만 개가량 판매됐다. 이 회사는 명품과 패션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다.
2017년 1월에는 빈폴과도 협업한 제품을 내놓았다. 지난해 CES에서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S.T.뒤퐁’과 함께 제작한 ‘스마트벨트’도 선보였다. 이 허리띠에는 S.T.뒤퐁의 상표와 함께 웰트가 개발에 참여했다는 표시가 새겨졌다. 협력 계기는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이다. 강 대표가 스타트업 대표로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명품 브랜드가 웰트를 대하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웰트가 유망한 한국 스타트업으로 유럽에 소개되자 S.T.뒤퐁이 웰트의 회사명을 함께 노출하는 디자인을 제안한 것이다. S.T.뒤퐁 에디션에는 웰트와 분당서울대병원이 협업해 개발한 낙상예측 기능도 들어갔다. 스마트벨트로는 세계 최초 기능으로 애플워치 등 타사 제품들의 낙상감지 기능을 넘어 사전에 착용자 낙상 위험도를 예측하고 예방했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기술 혁신과 함께 브랜딩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플워치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와 협업한 제품을 선보인 데서 볼 수 있듯 웨어러블도 패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강 대표가 스마트벨트 후속작으로 개발 중인 것은 ‘디지털 치료제’다. 이는 물리적으로 복용하는 약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먹는 약이다. 예를 들면 담배에 혐오감을 느껴 끊게 하거나 마음을 달래 불면증과 두통 등을 줄여주도록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이 차고 있는 스마트벨트로 정보를 얻는다면,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육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이는 디지털 치료가 된다는 설명이다.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건강관리 산업으로 보폭을 넓혀가는 강 대표의 지향점은 어딜까. 그는 건강과 기술을 융합해 국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을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내놨다. 강 대표는 최근 고부가가치 헬스케어 분야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 웰트가 큰 기업으로 자랄 경우, 롤 모델을 ‘삼성’으로 삼고 싶다고도 했다.
존경하는 기업가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을 꼽았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기치를 걸고 본인들의 사업을 한국 산업의 경쟁력으로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기업들은 삼성과 현대가 있는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했습니다. 늘 위기는 찾아옵니다.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준비하는 게 벤처기업인들이 가져야 할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출신고인 민족사관고의 교육 철학도 ‘교육입국’으로 사업보국과 맞닿아있습니다. 질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씨가 돼 사업보국할 수 있는 기업인들로 자라나는 것이니까요. 병원, 정부부처, 정보기술(IT) 기업을 거치면서 헬스케어와 IT의 접점에서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산업을 발굴하고 싶어요. 의대를 나와서 의사의 삶과 관련 없이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든 경험을 아울러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길러낸다면 그게 우리 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벤처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그 여정의 한 지점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