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통합당 조해진 의원실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입수한 2018년 6월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법적 책임 여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사회 회의록에 ‘월성 1호기는 2022년 11월까지 운영 허가를 받았고, 안전하다면 설계수명이 만료되더라도 기계적으로 폐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물론,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면서 기술적으로 검증된 효율적인 대체에너지 생산 방법이 있었다면 책임 논란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당시 법무실장이 12명의 이사진에게 행정지도를 따른 것이기 때문에 법원이 책임을 묻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행정절차법상 행정지도는 부당하게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제48조 1항), 지도를 받는 자는 서면으로 행정지도를 할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제49조 2항)
공정위는 ‘행정지도가 개입된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에서 ‘행정기관이 법령상 구체적 근거 없이 사업자들의 합의를 유도하는 행정지도를 한 결과 부당한 공동행위가 행해졌다 하더라도 그 부당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례도 ‘행정지도에 의한 것이라도 그것만으로 위법성이 조각(阻却)되거나 시정명령이 불허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라는 누군가의 행정지도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를 반대한 이사 1인을 제외하고는 11인 이사 모두가 민사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행정지도의 존재 여부도 큰 쟁점이 될 수 있다. 한수원 이사들이 행정지도를 서면으로 할 것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행정지도한 자가 발뺌하는 경우 이사들의 과실상계나 정상참작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대체에너지 생산 방식의 고비용과 저효율성 등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당장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누적부채가 128조7081억 원에 이르고, 지난 한 해 적자만도 1조 원을 초과해 전기요금 인상이 절박한 상황이다. 더욱이 월성원전 1호기는 국민 세금 7000억 원을 들여 보수해서 2022년 11월까지 운영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즉, 전문가들이 안전성을 인정한 원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한수원 이사들이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체기술로 에너지 생산비용을 7000억 원 이상 줄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줄이지 못했다면 최소한 이사회 결정 당시 비용 감소가 가능했다는 사실만이라도 입증해야 한다. 즉, 행정지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형사책임도 비켜 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사회 회의록 기재 내용으로 볼 때, 이사들은 결의 당시 이미 형사상 책임, 특히 배임죄(背任罪) 등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누군가의 행정지도를 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형사책임 역시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 혈세를 사용하고 국민에게 비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하려면 객관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집행을 위해서는 필요한 법적 절차도 준수해야 한다. 이상의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으로 덮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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