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사에서 여러 각도에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설명했다. 나눔과 상생의 민주주의와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거론했고,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르며, 지속 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먼 옛날 군주정과 귀족정 아래서 불평등과 부자유의 삶을 살았던 인류는 기나긴 투쟁을 통해 자유와 평등이 실현될 수 있는 민주정을 이룩했다. 중요한 사실은, 민주정의 지속을 위한 자유와 평등은 소극적 자유와 비례적 평등이라는 점이다. 소극적 자유란 타인이나 국가 등 제3자의 강제가 없는 상태이며, 비례적 평등이란 자신이 기여한 만큼 대우받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나 똑같은 양을 가지는 양적(숫자적) 평등이 아니라 비례적 평등이 분배 정의라고 했다. ‘기여한 만큼’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모든 시장 참여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정해진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평등한 경제란, 양적 평등을 구현하는 경제를 의미하는 것 같다. 결과의 평등이라 해도 좋겠다. 그런데 비례적 평등이 소극적 자유와 쌍을 이루듯이 양적 평등은 적극적 자유와 쌍을 이루는데, 적극적 자유란 제3자에 의해 강제되지 않으며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기 위한 물적 자원 등이 뒷받침되는 상태를 말한다. 당연히 제반 경제 활동에 정부의 깊숙한 개입을 요구하게 된다.

문제는, 적극적 자유와 양적 평등을 지향했던 사회는 모두 몰락했다는 것이다. 중용(中庸)을 벗어난 탓이다. 자유와 평등의 문제에서 노예 상태와 같은 부자유와 불평등은 한 극단이며 적극적 자유와 양적 평등은 다른 극단이다. 이 양 극단 간에 존재하는 소극적 자유와 비례적 평등이 중용이다. 그리고 민주정은 중용의 자유와 평등을 벗어나지 않을 때 건강하게 유지된다.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민주정이란 이런 것이다.

평등 경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소득분배를 피할 길 없다. 이는 반드시 사유재산을 침해함으로써 소유의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소유의 안정성이 훼손되면 사유재산의 약탈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정의감이 실종되며, 도덕과 법이 타락하며, 이는 다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해치고 국가를 침몰시킨다. 타락하는 민주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이다.

지금 한국의 모습도 딱 그렇다. 안보 불안 및 각종 세금 인상과 경영권 침해를 비롯한 기업 활동을 둘러싼 온갖 규제로 소유의 안정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지금 입법(立法) 거론되고 있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개정은 그런 위협을 더욱 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물론 그것은 자유가 아니지만), 현 정권은 적극적으로 사유재산을 침해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침몰시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되면 현 정권의 경제성적표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돈벌이 길은 막아 놓고 빚으로 운용하는 경제의 뒤끝이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시장경제로 복귀하기는커녕 평등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발표하는 현 정권의 속내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백치든지, 아니면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이 목표라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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