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재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담 = 오세훈 前 서울시장·김영우 前 통합당 의원
보수진영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당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며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불출마한 김영우 전 미래통합당 의원과 함께 보수 혁신의 방향과 방법을 짚었다. 오 전 서울시장은 “불평등 심화 현상에 보수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보수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국민 상식에서 벗어난 보수의 태도가 문제”라며 상식과 합리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지난 9일 문화일보에서 진행됐다.
△사회=미래통합당 총선 참패로 ‘1.5당’ 체제 얘기가 나오는 등 정치지형 자체가 변했다는 데 동의하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하 오)=국내 정치 지형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 현상으로 볼 수 있는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 10년 전부터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었다. 토마 피케티 교수가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이길 수 없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한 지도 꽤 됐다. 보수가 발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공적 권력을 농단해 탄핵이 발생했고, 이후 급격하게 기울게 됐다. 세계적 추세 속에서 한국이 좀 더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아직 진행형이다.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는 사회 변화 속에 있다.
△김영우 전 의원(이하 김)=보수진영이 불리한 정치 지형이라고 하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지난 30∼40년 동안 소위 노동계, 학계, 문화·예술계 등 정치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상식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이탈리아 공산당 이론가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 전술이다. 거기에 소위 진보진영은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굉장히 강력한 무기를 수단으로 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는 정치 지형이라든지, 민심의 변화에 적응을 못 했다. 적응을 못 한 정도가 아니라 ‘여당 같은 야당’의 모습을 고집 해왔다. ‘우리끼리 단결한다’고 해도 진보진영과의 정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는 수준에 왔다. 소위 진보진영은 모든 분야 핵심 세력이 네트워크화됐고 연대를 한다. 공고한 참호를 구축했고, 강력한 연대의식이 있다. 그러니까 조국, 윤미향 같은 사람을 절대적으로 사수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다. 반면 보수는 각자 열심히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연대의식은 굉장히 허약하다.
△사회=보수 가치도 힘을 잃었다고 봐야 하나.
△오=자유는 앞으로 더 중요해진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해 일상생활을 전부 뒤바꾸고 있다. 앞으로 가장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프라이버시다. 빅데이터 축적 등으로 인해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는데, 팬데믹 이후 명분까지 정부에 생겨버렸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자유, 특히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경쟁원리는 산업화에서 긍정적 효과를 낸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됐다. 경쟁은 필요한 가치지만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김=보수의 가치를 나름대로 개인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선거에서 4번 내리 참패했는데 보수라고 하는 가치의 실패가 아니라 보수를 표방하는 우리 태도의 실패다.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보수가 돼버렸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약자를 보호하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굉장히 뻔뻔한 모습을 유지했다. ‘웰빙 정당’의 모습을 보였고, 문재인 정권이 국정운영을 잘못하는 것에 기대며 반사이익만 바랐으며, 산업화 성공에만 매몰돼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굉장히 게을렀다.
△사회=다시 국민에게 인정받으려면 당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오=2018년 비상대책위원에서 당명 변경 의견이 나왔을 때 민생당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국민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이런 것에 관심 없다. 먹고사는 것이 최고 우선의 가치다. 우리 당 에너지의 70∼80%를 민생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 나가서 우리는 세 불어난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이른바 캐스팅보터인 중도층은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공직선거법 개정, 공수처법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은 먹고사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했을 것이다.
△김=두 가지 측면에서 변해야 한다. 여당보다 수단이 부족하지만, 국민이 느끼기에 굉장히 중요한 민생의 숙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내야 한다. 가치 지향점을 잘 세워서 민생 문제를 풀어내고 대안 정당이 되는 게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어떻게 누가 세일즈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파는 사람이 시원치 않으면 눈여겨보지 않는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섰다. 젊은 청년 비대위원들 많이 뽑은 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지만, 당 지도부 원맨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는 되지 않고,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치열한 고민, 토론 등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사회=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보수, 중도, 진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고, 기본소득제도 던졌다.
△오=나는 선의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가치를 버리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굳이 보수를 전면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는가, 민생을 앞으로 내세우면 되는 것이지’라고 이해한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어차피 여당 쪽에서 특정 대선주자들이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팬데믹 이후 달라질 세상에서 장점이 있다. 시의적절한 이슈 메이킹이라고 평가한다.
△김=보수, 진보, 중도 용어를 쓰지 말자는 시도는 비현실적이다. 모든 정책은 가치와 철학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진보든 보수든 나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성숙한 자세와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보수가 선거에서 패했다고 해서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은 진보진영 프레임에 넘어가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게으름을 장려해서는 안 된다. 소득이라는 것은 땀을 흘린 대가, 노동의 대가다. 소득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것보다는 약자를 3∼4배 지원해주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다.
△오=사회적 약자를 보듬는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을 우파 버전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3∼4년 전부터 우파 경제학자들은 ‘안심소득’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으로, 소득 격차 해소, 유효 수요 창출, 근로 의욕 저하 방지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 기본 개념만 간단히 말하면 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을 6000만 원으로 잡고, 한 가계의 소득과 중위소득의 차이에 0.5를 곱한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버는 가구는 2500만 원, 2000만 원을 버는 가구는 2000만 원을 지원한다. 기준소득보다 낮은 사람을 더 지원하되, 소득과 지원금의 합계는 노동해서 번 소득이 높은 가구가 더 많다. 이러면 소득 격차 해소 효과가 있고, 어려운 사람일수록 소득을 많이 사용하기에 경제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소득 외에 플러스 알파가 존재하는 구조여서 더 열심히 벌 동기도 생긴다. 현 복지제도 일부를 수정해 중복 지원을 없애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김=사실 비대위 체제에 반대했고, 지금도 우려가 크다.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결과물을 누가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드는지를 국민은 본다. 비대위가 잘못되면 당은 책임을 지지 않고 비대위가 책임을 지게 될 텐데 이는 과거 행태의 악순환이다. 우리가 스스로 어려운 길을 가지 않고 ‘외주’를 주는 건 웰빙 정당의 대표적 모습이다. 하지만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으니 좋은 물건을 같이 만들자고 부탁하고 싶다.
△오=나도 부정적이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지, 왜 계속 해결사를 고용하는지 모르겠다. 국민이 보기에 김 위원장이 한 개혁이지, 미래통합당 내지 보수 정당이 한 개혁이 아니게 된다. 우리가 체화했느냐를 볼 것이다. 보수 정당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도와드려야 그분이 이룩한 혁신의 과실을 우리가 온전히 누릴 수 있고,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사회=2022년 대선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그에 맞춰 당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오=단어 한두 개로 요약하면 결국은 공정과 상생이다. 30∼40대는 우리 편이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내가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안 된다면 자식 대에서라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고민한다. 4차 산업혁명, 팬데믹이라는 엄청난 변혁을 겪으면서 훨씬 위기의식이 커진다.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다. 자산 격차도, 소득 격차도, 공정이라는 가치 실현도 안 됐다. 공정과 상생이라는 화두를 선점하는 정당이나 후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나 후보가 우위에 설 것이다.
△김=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이유는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국, 윤미향을 싸고돌면서 검찰개혁이나 토착 왜구를 얘기한다. 법치를 훼손했던 과거를 잊은 채 문재인 정권 심판만 주장한 보수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가지고 있는 상식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이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과도한 자기 확신만이 판치는 정치가 지속되는 한 좋은 정치는 요원할 것이다.
사회=조성진 정치부 차장·정리=서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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