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소득 어떻게 볼 것인가
전국민적 강제 증세로 ‘자유의 제약’, 빈곤층엔 실질적 지원 못해… 재원 대책 등 지속 가능성 없어
저성장·고용불안 심화하며 與野 선거 의식 “도입” 합창… 4차 산업혁명 반영한 새 사회정책 논의돼야
여야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기본소득 도입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 이슈가 2년 뒤 대통령선거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제 주장은 지속적이고 제도화한 사회보장 정책을 추진하자는 것이어서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일회성 지급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논의는 그게 사회주의적 좌파이론이든 시장주의적 급진론이든 대부분 지속 가능성이 없고, 기존 복지체계를 와해시키며, 강제 과세로 자유를 제약하고, 빈곤층의 실질적 지원을 막는 ‘중간층 선동용 포퓰리즘’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새 사회정책의 개발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커지지만 어떤 경우에도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제의 역사와 논쟁
한국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유력 인사와 여당 소속 일부 광역 단체장이 이 논의를 이어가는 가운데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논쟁을 주도하고 나섰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먹을 수 없으면 그 사람한테 무슨 자유가 있겠냐. 그 가능성을 높여야 자유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실질적 자유’ 개념을 꺼내 들었다. 김 위원장의 ‘ 실질적 자유 ’는 벨기에의 정치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 교수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적 기본소득의 치명성
‘21세기 기본소득’의 저자인 판 파레이스는 1996년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액수의 기본소득 을 지급해 시민이 실질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일정한 소득이 있다면 일해야 한다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의 주장은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적절한 소득이 없어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정한 지원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이미 일정한 소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추가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적절성이 없다. 둘째,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데, 이것은 결국 또 다른 사람들의 실질적인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30만 원을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경우 매년 대략 ‘30만 원×12개월×5000만 명=180조 원’이 소요되고, 1인당 50만 원을 지급하면 약 300조 원이 소요된다.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강제성을 가진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만큼 질병이나 실직 등으로 현실적으로 빈곤에 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할 수 없게 되는 역설이 존재한다. 소득 부족으로 가장 심각하게 자유를 제약받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효과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사회주의적 기본소득제는 빈곤층의 실질적 필요에도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시장주의적 급진론의 문제
시장주의적 시각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현행 복지제도의 혜택을 하나로 통합해 현금 지원 제도인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주장이다. 국민은 현금을 갖고 자신이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시장에서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음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는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를 폐지하고 그만큼을 현금 지급으로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엄청난 추가 재원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했을 때 과연 시장이 시민에게 필요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국민건강보험체제에서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으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시장체제에서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훨씬 비싼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외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시장이 필요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다. 결국 시장주의적 급진론에서 제시하는 기본소득도 사회복지서비스의 ‘수급 불일치’ 문제를 낳기 때문에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와는 좀 다른 맥락에서 고용의 불안정과 소득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자기능력 개발을 위한 기회를 갖게 돼 취직과 실직을 반복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핀란드는 2017∼2018년 사이 2000명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전국적 정책 실험을 했다. 2년간 특별한 조건 없이 매달 1인당 560유로(당시 약 70만 원)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수혜자들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비수혜 집단과 비교 분석했는데, 그 결과 수혜집단의 고용 상황이 비교 집단에 비해 나아졌다고 통계적으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기본소득 실험은 사실상 실패했다. 핀란드의 실험이 과연 기본소득에 관한 것인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실험 대상이 된 정책수단은 기본소득이라기보다는 조건없는 실업수당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가 있다.
◇새 사회정책 개발의 전제조건
코로나19 사태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고용의 불안정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로 인해 새로운 사회정책 수요가 대두하는 현실에 적극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AI 기술의 확대로 비정규직 근로자와 불완전 고용 근로자가 더욱 양산되고 고용 상황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면 정규직 중심의 전통적 사회정책으로는 증가하는 사회적 필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시대적 흐름에 맞는 새로운 사회정책 수단의 개발이 시급하다.
그러나 그 대안이 기본소득이어야 하느냐는 점은 의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국회에서 “정부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저로서는 선정,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라며 일단 신중론을 폈다. 빈곤층과 하층민의 실질적 필요나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선제조건 등을 외면한 채 선거와 표만 의식한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는 대중인기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이는 기존 복지체제는 물론 국가 재정과 경제 전반을 파탄에 빠트릴 수도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사회주의적 주장의 치명성 : 현대의 기본소득은 판 파레이스의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을 통해 대중화함. 하지만 이는 강제 증세로 자유의 제약을 불러오고, 하층민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가로막으며, 중산층만 배를 불리는 ‘중간층 선동용 포퓰리즘’으로 흐름.
시장주의적 급진론의 경우 :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를 폐지하고 현금 지급으로 대신한다는 방안으로 상당한 추가 재원을 필요로 하지는 않음. 그러나 시장이 시민들에게 필요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와 관련한 근본적인 ‘수급 불일치’ 문제가 생김.
새 사회정책 개발의 전제조건 :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고용 불안정과 소득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새 정책 개발 필요성 생겨. 그러나 재원 대책 없이 선거와 표만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흐르면 기존 복지체제와 국가 경제를 파탄에 빠트릴 위험 있음.
■ 용어 설명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소득을 말함. 한 사회의 가치의 총합은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것으로 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지속성을 특징으로 함.
‘실질적 자유’는 경제적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의의 기반을 이루게 하는 자유를 말함. 판 파레이스의 책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Real Freedom for All)’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용어로 ‘형식적 자유’와 비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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