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해밀턴,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사진 콜라주, 1956.
리처드 해밀턴,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사진 콜라주, 1956.

■ 조주연의 현대미술 속으로 - (10) 팝아트의 원조, 영국 팝

인디펜던트 그룹 ‘사회·문화에 영향준 건 예술 아닌 과학기술’ 주창… 구성원·형식·매체·장르 간 구분 배제
英 팝아트는 환호와 조롱, 동경과 거부 사이 ‘애매한 공존’이 특징… 60년대 이후 美정부 후원속 ‘풍요 과시’미술로 주목


팝아트의 원조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다. 그런데도 팝아트는 영국의 미술이라기보다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미술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팝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앤디 워홀의 강렬한 존재감, 팝이 원천으로 삼은 광고, 만화, 보도사진, 영화 같은 산업적 대중문화의 원조가 미국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추상표현주의 쇠퇴 이후 미국을 대표할 미술로 팝아트를 후원한 미국 정부의 문화정책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1950년대에는 추상표현주의가 세계만방에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미술로 간택됐다면,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팝아트가 미국의 풍요를 과시할 수 있는 미술로 주목받았던 것이다.

팝이 전후 미국의 풍요와 연관이 있음은 미국의 대중잡지들에 실린 사진들을 이용해 영국에서 일찍이 194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콜라주 작업들이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령, 에두아르도 파올로치(1924∼2005)의 1948년 작 ‘즐거워야 성격도 좋아진다는 것은 심리학적 사실이다’가 좋은 예다. 이 콜라주를 보면, 신식 가전과 가구를 빠짐없이 갖춘 밝고 넓은 미국의 가정집에서 주부들은 청소를 하면서도 외출복 같은 차림으로 더없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고 있다.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에 대해 흔히 표하는 경멸적 태도”가 깔려 있기는 했지만, 쾌적함과 안락함이 돋보이는 이 콜라주는 영국의 전후 현실이라는 일반적인 맥락에서 분명 풍요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전쟁 특수에 따른 유례없는 호황 속에 소비사회로 급진전했지만, 영국은 생필품을 배급받아 생계를 이어가야 할 정도로 상당 기간 궁핍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회의 그룹 6 ‘파티오와 퍼빌리언’.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회의 그룹 6 ‘파티오와 퍼빌리언’.

그러나 이 콜라주는 또한 전후 영국 미술계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여러 종류의 구식이 뒤섞인 전통에 대한 저항을 도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영국 미술계는 낭만주의와 표현주의에 각각 뿌리를 둔 신낭만주의 풍경화가들과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배하는 고상하고 침울한 세계였는데, 미국에서 건너온 싸구려 잡지들에 실린 사진 이미지를 세심하게 오려 붙인 이 당돌하고 명랑한 콜라주는 재료에서부터 소재와 주제, 그리고 형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고급 미술의 전통과 엘리트주의의 권위를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한 방이었던 것이다.

영국 팝은 파올로치와 뜻을 같이했던 다양한 인물이 모인 인디펜던트 그룹에서 발전했다. 이 그룹은 당대미술연구소(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의 후원을 받았지만, 당대의 미학이나 미술의 일부가 전혀 아니었다. 화가, 조각가 같은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건축가, 건축사학자, 비평가까지 아울렀던 인디펜던트 그룹은 1952년 과학기술에 관심을 둔 느슨한 문화연구모임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와 문화, 심지어 예술에조차 더 큰 영향을 준 것이 예술이 아니라 과학기술이었다는 점에 주목해 탐구했다. 그러나 1955년 이 그룹은 과학기술에 더해 대중문화도 진지한 토론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순수미술과 대중예술의 위계적 구분을 거부하는 개념, 로런스 앨러웨이가 제시한 ‘순수 예술/대중 예술의 연속체’라는 개념이다.

리처드 해밀턴(1922∼2011)은 인디펜던트 그룹과 영국 팝의 이런 궤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미술가다. 이는 그가 기획하거나 참여한 전시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1951년 인디펜던트 그룹의 공식 출범에 앞서 해밀턴이 기획한 ‘성장과 형태’전은 영사기, 스크린을 활용해 자연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구조를 담은 사진으로 이뤄진 환경을 연출했다. 이 전시회에서는 이후 인디펜던트 그룹의 작업에서 핵심을 차지할 요소들이 제시됐는데, 미술이 아닌 이미지, 복수의 매체, 예술 형식으로서의 전시 디자인이 그런 요소들이다. 1955년에 개최된 ‘인간, 기계, 운동’전도 해밀턴이 제안한 전시회로, 기계와 결합해 변형된 인간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대형 사진들이 제시됐다. 바다, 대지, 지구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여러 기계-인간 이미지는 기술과 결합한 인간을 미래주의적으로 숭고하게 보여줬지만, 대부분은 이미 구태의연한 환상을 되풀이하는 진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시 디자인은 참신했다. 이 전시회에서 이미지들은 플렉시글라스 패널에 담겨 미로처럼 얽힌 강철 틀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사이를 누비는 관람객은 과거와 현재의 테크노-미래를 콜라주하며 떠돌아다니는 것 같은 경험을 했던 것이다.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즐거워야 성격도 좋아진다는 것은 심리학적 사실이다’, 콜라주, 1948.
에두아르도 파올로치, ‘즐거워야 성격도 좋아진다는 것은 심리학적 사실이다’, 콜라주, 1948.
하지만 해밀턴의 인디펜던트 그룹 활동과 관련해 가장 유명하면서도 중요한 전시회는 뭐니 뭐니 해도 1956년의 ‘이것이 내일이다’전이다. 인디펜던트 그룹이 해산된 후에 개최된 이 전시회는 말하자면 인디펜던트 그룹 활동의 공식 결산과도 같은 의미를 지녔는데, 총 12그룹이 각자 독립적인 기획 아래 참여하는 방식을 취했다. 각 팀은 인디펜던트 그룹답게 미술가부터 엔지니어까지 다양한 성원들로 구성됐으며, 매체와 형식 내지 장르 사이의 구분과 위계도 배제됐다. 이 그룹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그룹 2와 그룹 6이었다. ‘내일’이라는 미래에 대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상반된 전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해밀턴이 존 뵐커(건축가/디자이너)·존 맥헤일(미술가/사회학자)과 함께 작업한 그룹 2의 ‘유령의 집’은 자본주의 산업기술문명에 힘입은 스펙터클의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반면에 스미스슨 부부(둘 다 건축가), 파올로치, 나이절 헨더슨(사진가/다큐멘터리 작가)이 작업한 그룹 6의 ‘파티오와 퍼빌리언’은 자본주의 과학기술문명이 초래할 파국의 디스토피아를 제시했다.

모래로 덮인 파티오에 오래된 나무, 플라스틱 골판지, 반사되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퍼빌리언에서 스미스슨 부부는 인간의 필요라는 관점에서 최소한의 건축을 은신처로 제안했다. 퍼빌리언의 내부는 파올로치와 헨더슨이 맡았는데, 바퀴 하나, 조각품 하나, 몇 가지 조잡한 물건만을 두어 인간 활동의 최소치를 제시했다. 결국 ‘파티오와 퍼빌리언’은 원시 상태, 현대, 종말 이후가 동시에 혼재한 것 같은 모습이 됐고, 가시 돋친 철사가 쳐진 실내는 핵폭발 이후 잔해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이는 부서진 기계 인간 형상과 닮은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한 헨더슨의 ‘인간 두상’이 군림하고 있는 바람에 특히 그랬다.

‘인간, 기계, 운동’ 전시회 광경, 1955.
‘인간, 기계, 운동’ 전시회 광경, 1955.

미래에 대한 두 그룹의 관점 차이는 기술문명이 낳은 현대판 괴물 프랑켄슈타인(그룹 6)과 주인 아가씨를 보호하는 충직한 로봇 로비(그룹 2)의 대비로 흔히 강조된다. 그러나 해밀턴이 속한 그룹 2의 유토피아적 전망이 그저 낙관적인 미래상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이 전시회의 포스터로 쓰여 ‘팝아트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첫 작품’이 된 해밀턴의 사진 콜라주 ‘도대체 무엇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가’의 양가적인 분위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은 콜라주(26×24.8㎝)는 앞서 본 파올로치의 콜라주처럼 전후 미국의 소비문화가 낳은 산물, 주로 광고사진 이미지들을 가지고 바로 그 소비문화에 대한 환호와 조롱을 동시에 드러내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해밀턴이 보여주는 ‘오늘날의 가정’은 상품으로 뒤덮인 인공낙원이다. 이 가정의 문장은 화면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포드사의 로고인데, 포드가 대변하는 대량생산체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이 가정의 실내외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의 생산자다. 즐비한 가전제품(TV, 레코드플레이어, 전화기, 청소기)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음식(햄)과 문화(만화, 영화, 드라마, 신문, 음악)도 상품화했다. 심지어 예술마저 상품화(바우하우스는 가구로, 폴록의 드립 페인팅은 카펫으로)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데 해밀턴이 드러내는 대량생산체제의 지배 원리에는 상품화뿐만 아니라 팽창도 있다. 두 원리는 현대판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에서 다소 코믹한 과장을 통해 드러난다. 근육질의 보디빌더와 글래머인 핀업걸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터질 듯한 몸매를 한껏 뽐낼 때, 거기에서 작용하는 것은 팽창의 원리다. 이 팽창 원리의 정점은 상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두 사람에게서 유일하게 상대를 향하고 있는 신체 부위, 즉 남성의 페니스와 여성의 젖가슴이다. 그런데 두 부위는 모두 상품에 덮여 있다. 페니스는 엄청난 크기의 막대사탕으로, 젖가슴은 현란한 반짝이 시퀸 장식으로! 이렇게 상품이 부착된 신체는 아담의 바로 뒤와 이브의 바로 앞에 놓인 상품, 즉 호스가 엄청 긴 청소기 및 젖가슴 모양의 거대한 햄과의 동일시로 이어진다. 결국, 이 대량생산체제의 낙원에서는 인간도 상품화의 원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도 인간이 상품화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 성 상품화의 방식으로.

따라서 해밀턴의 유토피아는 풍요를 과시하며 탐닉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현대 산업문명의 미래를 무작정 찬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룹 2의 ‘유령의 집’은 영화 포스터와 시네마스코프 콜라주, 마르셀 뒤샹을 모방한 회전 부조와 광학적 다이어그램 등 모든 종류의 감각과 예술을 호출한 정보의 홍수로 자본주의의 스펙터클을 유감없이 보여줬지만, 그 스펙터클이 실은 무기력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정신착란으로서의 오락임을 또한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환호와 조롱, 동경과 거부의 애매한 공존 혹은 긴장은 영국 팝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일이다’전시회 무렵에는 전후 미국의 국제정책 마셜플랜이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48년에서 1952년까지 이어진 미국의 마셜플랜은 막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전후 유럽의 생산과 경제 성장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개인의 소비 수준 향상을 유럽의 전 인구에게 약속했다. 이 약속은 소련과 대결하는 미국의 결정적인 무기였다. 번듯한 주택, 가전제품, 자동차, 여행, 오락에의 접근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그 약속은 점점 더 좋은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영국에서도 배급의 시대는 끝나고 소비문화가 도래했다. 이와 더불어 인디펜던트 그룹이 유지해온 긴장도 와해되면서 영국 팝은 막을 내린다.

미술이론가


■ 용어설명

런던 당대미술연구소와 아트 포럼 : 1946년에 뉴욕현대미술관을 모델로 런던에 설립된 당대미술연구소(ICA)는 2차 대전 이전 현대미술의 중요 유산인 초현실주의와 구축조각을 중심으로 삼아, 영국 제도권 미술의 구태의연한 복고주의에 맞서는 모더니즘의 터전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인디펜던트 그룹이 보기엔 ICA의 모더니즘도 구태의연한 잔재(‘추상 좌파 프로이트 미학’)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문화를 끌어들여 유럽의 아카데믹한 모더니즘을 쇄신하려 한 인디펜던트 그룹과 ICA는 근본 입장이 달랐다. 그런데 전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정착이 지연되는 동안 ICA는 과거 세대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후원했고, 여기서 인디펜던트 그룹이 펼친 다양한 주제의 연구와 토론의 장으로 발전한 것이 파리의 카페, 뉴욕의 아트 바에 필적하는 런던의 아트 포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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