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국제극예술協 명예회장, ‘나, 살아남은…’ 출간

회고록 성격의 ‘연극적 소설’


김정옥(왼쪽 사진) 국제극예술협회(ITI)세계본부 명예회장이 책 ‘나,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펴냈다. 김 회장은 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한편 100여 편의 작품을 직접 연출한 연극계 거장이다. ITI세계본부 회장을 세 번이나 맡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도 지냈다.

올해 만 88세인 그는 이번 책에서 70년 전에 겪은 6·25 전쟁을 되돌아봤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제목처럼 ‘살아남은 자’로서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친구들의 혼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회고록 성격이지만, 형식은 김 회장의 아호인 석두(夕杜)를 주인공으로 주변 친구들의 삶과 죽음이 명멸하는 ‘연극적 소설’이다.

1940년대에 소학교를 다닌 석두가 광주서중에 입학해 해방을 맞으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중학교 6학년 때도 문학회 모임 ‘구맥회(九麥會)’를 할 정도로 문학에 빠져 지냈다. 광주서중과 전남여중 학생 9명으로 구성된 구맥회는 일제강점기 문인동인 구인회를 본떠 만든 것이었다. 6·25 전쟁 와중에 3명이 죽거나 실종된 탓에 1951년 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엔 ‘구맥의 파편’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살아남은 6명의 죄책감이 반영된 글귀였다.

대학생으로 6·25 전쟁을 만난 석두는 이념 대립이 낳은 전쟁의 광기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부산의 전시연합대학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서울대 문리대 동기들과 ‘구도(構圖)’ 동인을 만들었다. 김동리와 김내성 등 기성 문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석두는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유학을 했고, 귀국 후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가 됐다. 평탄한 개인사로 보이지만, 그의 내면엔 6·25전쟁에 대한 상처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친구나 선배들이 전란 속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은 회색분자여서 살아남았다는 트라우마가 평생의 짐이었다.

유학 시절에 윤이상을 만난 적이 있는데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것, 광주서중 김용구가 월북 후 남파 간첩으로 내려와 붙잡혔을 때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은 것 등은 행운이었으나 살아남은 자로서의 회한을 더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조동화 전 월간 춤 발행인 등 친구들이 자신에게 들려줬던 6·25전쟁 체험담을 담았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함께 겪었던 동시대인에 대한 애정과 부채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연극인답게 이 책에서 ‘스탈린과 그 부하들’ ‘김일성과 박헌영’ ‘아이젠하워와 맥아더’를 등장시켜 그들의 대화를 가상으로 기록한다. 그것을 통해 6·25전쟁은 위장된 3차세계대전이었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한반도가 절대로 또다시 열강의 전쟁터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구도 통일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절히 강조한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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