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치용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
감독시절 프로스포츠 첫7연패
다채로운 전략전술 펼치면서
주전·후보 동등하게 원팀으로
‘코트 위 제갈공명’ 능력 발휘
선수촌장 부임 후 ‘신상필벌’
칭찬으로 사기 북돋는 동시에
잘못있으면 반드시 책임 물어
규율 어긴선수 가차없이 징계
신치용(65·사진)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은 한국 배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지도자다. 신 촌장의 별명은 ‘우승 제조기’. 1995년 삼성화재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해 실업리그 통산 최다인 8회, 프로배구 V리그가 탄생한 뒤에도 역시 최다인 8회 우승을 일궜다. 신 촌장이 지휘한 삼성화재는 실업리그에서 역대 최다인 8연패(1997∼2004년), V리그에서도 역대 최다인 7연패(2008∼2014년)를 달성했다. 실업리그에선 역대 최다인 77연승 신화를 작성했다. 그는 1999∼2002년, 2008년, 2010년 남자배구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2001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등을 획득했다.
신 촌장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배구를 시작했다. 포지션은 볼을 배급하는 세터. 1977년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백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신 촌장은 동갑내기 절친이자 스타 세터였던 김호철 전 대표팀 감독에게 밀렸다.
1980년 이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신 촌장은 은퇴를 머릿속에 그렸다. 당시 한국전력 소속이던 신 촌장은 유니폼을 벗고 일반 사원으로 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인이 된 양인택 당시 한국전력 감독이 그를 플레잉코치로 호출했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신 촌장은 1995년 삼성화재 감독으로 부임할 때까지 12년간 양 감독을 보좌하면서 양 감독의 용병술, 분석력, 그리고 전략전술을 배웠다.
신 촌장이 지도자로 대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빠르고 깊이 있는 두뇌회전이 첫손에 꼽힌다. 그는 ‘코트 위의 제갈공명’으로 불렸다. 그의 전략전술은 다채롭다. 플랜A는 기본이고 B, C, D까지 마련하고 코트에 나간다. 선수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선수 기용으로 최상의 결과를 확보한다. 그의 표정, 몸짓에선 화끈함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선수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조용한 카리스마’에 비유할 수 있다. 선수단을 자상하게, 세심하게 살피고 관리하지만 규율에선 양보를 하지 않았다. 제갈량처럼….
신 촌장은 감독 시절 규율로 선수단을 다잡았다. 취침 시 휴대전화 반납, 기상 직후 체중 확인, 연습 경기에서도 유니폼 착용 등을 강조했고 지켰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를 방지하고, 24시간 몸을 관리하며, 언제 어디서든 팀워크를 발휘하는 데 효과만점. 스타, 외국인 선수일지라도 ‘신치용식 규율’ 앞에선 평등했다. 신 촌장은 그리고 좌우명인 신한불란(信汗不亂·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을 공평하게 적용했다. 주전과 후보를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했다. 그래서 삼성화재선수단은 진하디진한 동료애를 발휘, 원 팀(One Team)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신 촌장은 사위 박철우(한국전력)에게도 엄격했다. 박철우는 2010년 현대캐피탈에서 삼성화재로 이적했고, 이듬해 신 촌장의 차녀 신혜인과 결혼했다. 박철우는 경기장과 훈련장은 물론, 집에서도 신 촌장을 “감독님”으로 불렀다. 공사 구분이 확고한 신 촌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박철우는 2015년 신 촌장이 삼성화재 단장으로 보직을 바꾼 뒤에야 호칭을 바꿨다.
2015년 6월 감독직에서 물러난 신 촌장은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 겸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임원(부사장)과 상임고문을 거쳤고 2019년 2월 진천선수촌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선수촌장으로 발탁된 건 지도자 시절 완벽에 가깝게 배구단을 관리했고, 최강의 조직력을 다듬었기 때문. 그는 삼성화재 배구단을 이끌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선수단을 관리한다. 국가대표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도록 하루 종일, 세심하게 선수촌을 살핀다. 오전 5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선수촌을 돌아다니며 각종 시설을 점검한다. 금요일 저녁 선수촌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고 일요일 저녁, 또는 월요일 새벽 선수촌에 입촌한다.
신 촌장은 선수, 지도자, 경영인 등으로 쌓은 경험을 선수촌 운영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신치용식 규율을 선수촌에도 투영했다. 선수로서의 기본을 잃거나, 조직에 누를 끼치면 가차 없이 철퇴를 내린다. 부임 직후 여자선수 숙소 출입 금지 규정을 어긴 쇼트트랙 김건우와 출입을 도운 김예진에게 각각 3개월과 2개월의 입촌 금지, 지난 5월엔 성희롱 논란을 일으킨 쇼트트랙 대표팀 전원에게 1개월 퇴촌 징계를 내렸다. ‘국가대표니까 좀 봐줘야지’ ‘그래도 국가대표인데’라면서 어물쩍 넘기는 법이 없다. 칭찬으로 사기를 북돋지만,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그래야 기강이 잡히고, 잡음이 이어지지 않는다.
진천선수촌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훈련이 계속 이어져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3월 27일 국가대표들이 모두 퇴촌했다. 신 촌장은 “선수 없는 선수촌은 팥소 없는 찐빵이다. 선수촌은 에너지가 흐르고 넘쳐야 하는 곳인데 아쉽다. 지난달 11일 국가대표들이 입촌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려 보류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면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한 후 입촌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촌장의 세밀한 관리, 지휘 아래 훈련에 전념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최상의 성적을 거두겠다는 대한체육회의 계획은 1년 연기됐다.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탓에 내년으로 미뤄졌기 때문. 선수촌장의 임기는 2년으로, 신 촌장은 내년 2월까지 국가대표를 조련한다. 도쿄올림픽은 내년 7월로 연기됐다. 지금으로선 그가 연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국가대표를 이끌 것으로 내다보인다. 하지만 신 촌장은 말을 아꼈다.
신 촌장은 “도쿄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 촌장직을 맡았고,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된 건 국가대표들에게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아쉬움이 크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몫이기에 제가 ‘더 하고 싶다’ ‘물러나겠다’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선수촌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 국가대표들의 기량 향상에 밑거름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신치용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은 부산 아미초 5학년이던 해 배구에 입문했다. 신 촌장은 영남제일중, 성지공업고, 성균관대에 진학했고 1977년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선수로는 빛을 보지 못했고 당시 양인택 한국전력 감독의 권유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신 촌장은 1995년 삼성화재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고 2015년까지 20년간 지휘한 뒤 은퇴,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과 상임고문을 거쳐 2019년부터 진천선수촌장을 맡고 있다.
나이 : 65
학력 : 부산 아미초∼영남제일중∼성지공업고∼성균관대
이력 : △1983∼1995 한국전력 코치 △1991∼1994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 △1995∼2015 프로배구 삼성화재 감독 △1999∼2002·2008·2010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2015∼2017 삼성화재 단장 △2017∼2019 삼성화재 상임고문 △2019∼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
김호철 전 배구대표팀 감독
김호철(65) 전 배구대표팀 감독과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절친이다. 둘은 1955년생 동갑내기로 알고 지낸 지 50년이 넘는다. 신 촌장은 부산에서, 김 전 감독은 경남 밀양에서 배구를 시작했고 초교 6학년 시절부터 우정을 쌓았다. 선수 시절 김 전 감독은 스타였고, 신 촌장은 대표팀에서 그의 백업이었다. 하지만 지도자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신 촌장의 감독 시절 삼성화재와 김 전 감독의 현대캐피탈은 2005∼2006시즌부터 4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서 격돌, 사이좋게 2승 2패를 나눠 가졌다. 둘은 서로에게 항상 긍정적인 자극제가 됐고, 둘 모두 최고의 사령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프로농구 현대모비스의 유재학(57) 감독과 배구인인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의 친분은 무척 두텁다. 둘은 2013년 봄 처음 만나 8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신 촌장은 “다른 종목 지도자 중 가장 많이 만난 인물이 유 감독”이라고 귀띔했다. 다양한 전략전술, 엄격한 규율, 그리고 최고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둘은 빼닮았다. 신 촌장과 유 감독은 선수단 관리 등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주고받으며, 친형제처럼 어울린다. 둘 모두 선수단 장악력이 뛰어난 ‘합리적인 악질’이다. 신 촌장은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최다인 8회 우승, 유 감독은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최다인 6회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
신영철(56) 우리카드 감독은 1988년 한국전력에 입단했고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당시 코치였다. 이때부터 둘은 바늘과 실에 비유됐다. 신 촌장이 1995년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자 신 감독은 1996년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1999년 시즌을 마치고 신 감독이 은퇴하자 신 촌장은 그를 코치로 기용했다. 둘은 감독과 코치로 실업리그 7연패를 이끌었다. 신 촌장은 “수많은 제자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고 모두 애착이 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신 감독은 내게 특별하다”고 귀띔했다. 신 감독은 2004년 당시 LG화재(현 KB손해보험) 사령탑으로 부임했고 2차례 정규리그 1위, 3차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철우 사위·한국전력 선수
신치용 진천선수촌장과 박철우(35·한국전력)의 관계는 독특하다. 스승과 제자, 장인과 사위. 박철우는 2010년 현대캐피탈에서 신 촌장이 지휘하던 삼성화재로 이적했고, 1년 뒤 신 촌장의 둘째 딸 신혜인과 결혼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신 촌장은 사와 공을 철저하게 구분했다. 경기 중 사위가 실수했을 땐 호되게 질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 촌장처럼 박철우 역시 대기록을 작성했다. 2018년 12월 V리그 남자부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5000득점을 달성했다. 박철우는 결혼한 뒤 집에서도 신 촌장을 “감독님”으로 불렀고, 신 촌장이 감독직을 내려놓은 뒤에야 “장인어른”으로 바꿨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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