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은 고인에 대해 “병원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편안히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며 “유언에 따라 가족들만 모여 장례미사를 드렸다”고 뒤늦은 부음을 전했다.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출판계에 입문한 고인은 1977년 까치글방을 차렸다. 처음 펴낸 책은 차기벽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한국 민족주의의 이념과 실태’였다. 민족주의는 당시 유신에 대항하는 논리의 하나였다.
학술서를 통해 지성계를 이끌겠다는 고인의 포부는 국내 저자뿐 아니라 세계적인 고전과 동시대 석학들의 역작을 폭넓게 소개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사기’(사마천), ‘역사란 무엇인가’(E H 카),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근대세계체제’(이매뉴얼 월러스틴), ‘중국철학사’(펑유란), ‘괴델, 에셔, 바흐’(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스티븐 호킹),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S 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총 4권에 이르는 ‘풍속의 역사’(에두아르트 푹스), 6권으로 이뤄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페르낭 브로델) 등 세계적 역사서 번역은 독자들의 시야를 넓혔을 뿐 아니라 역사학계와 인접 학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해박한 지식으로 이름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고대 문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적 주장을 담은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 등도 국내에 소개했다. 까치글방은 인터넷 홈페이지 회사 소개에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을 출간함으로써 사회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당대 현실을 반영하고, 지적·문화적으로는 학계와 문화예술계를 뒷받침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고인은 2001년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인 공로상, 200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부문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후인 씨, 딸 후영(까치글방 발행인) 씨 등이 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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