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민의 오페라 문화사 - ⑩ 오페라와 뮤지컬
음악은 지적 전달력 약하지만 감정표현에 효과적…17세기 초기 오페라·바로크 시기 거치며 음악과 극의 비중 변화
레치타티보·아리오소 등 노래 통해 인물 성격 묘사…캐츠·레미제라블 등 ‘송스루 뮤지컬’은 대사없이 노래 ‘오페라 환상’ 좇아
◇음악의 효능과 정감 이론 = 모든 공연예술 장르에는 규범이 있다. 말을 가지고 이야기를 푸는 것이 연극의 규범이고, 춤을 통해 이야기를 푸는 것이 무용극의 규범이라면, 음악극의 규범은 노래다. 음악극에서 노래를 통한 이야기 서술은 관객과 배우 간의 약속 같은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노래로 세상을 표현합니다.” 음악극이 시작될 때 관객은 잠시 어색함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노래가 일상 언어인 양 ‘노래하는 배우’가 풀어가는 사연에 빠져든다.
말이라는 편한 표현수단이 있는데 굳이 노래로 극을 만드는 것은 음악의 감동으로 세상을 표현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음악은 언어나 회화보다 구체적 표현과 지적 전달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효과적인 매체이다. 사랑의 행복감과 격한 질투, 분노, 슬픔 등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음악만큼 강렬하게 전달해주는 매체는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음악이 사랑, 증오, 희망, 두려움 등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이론서 ‘정념론’(1649)을 통해 인간 감정을 사랑, 미움, 기쁨, 슬픔, 욕망, 방황의 6가지로 분류하는 정서 분류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이론에 기대어 독일 음악학자들이 만든 ‘정감 이론’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 상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수백 가지 방법들의 집대성으로, 오늘날까지 수백 권의 연구서들이 전해진다. 바로크 시절 이탈리아의 다카포 아리아의 전통도 정감 이론의 결과였다. 다카포 아리아의 각 섹션에 담겨진 슬픔, 질투, 환희, 분노 등의 정서들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과 인물의 개성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emotion)과 구별해 정감(affection)이라 불렀다.
오페라와 뮤지컬에선 음악과 극의 결합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17세기 초창기 이탈리아 오페라를 지칭하던 명칭인 ‘drama per musica’(음악으로 된 극)는 초기 이탈리아 오페라가 음악보다 극의 개념에 충실했음을 말해주고, 이후 프랑스 오페라를 지칭하던 명칭인 ‘tragedie en musique’(음악 비극)도 오페라를 근본적으로 음악으로 된 ‘연극’으로 보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해준다. 20세기 초 새로운 대중적 음악극으로 떠오른 뮤지컬을 지칭하던 ‘musical comedy’(음악으로 된 코미디)와 ‘musical play’(음악으로 된 연극)라는 명칭도 음악과 극의 만남을 분명히 한다.
초기 명칭들에서 알 수 있듯, 오페라와 뮤지컬은 음악 자체도 중요하지만 극의 사연을 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작곡가가 아무리 훌륭한 작곡 능력을 갖추어도 극에 대한 이해와 극적 상상력이 부족하면 한계가 있다. 음악극에서 음악과 극의 결합이 언제나 이상적 상태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오페라를 만든 이탈리아의 예술인 동호회 ‘카메라타’의 회원들은 ‘노래로 세상을 재현한다’는 재현양식의 신념을 토대로 이상적 음악극에 대한 실험을 꾀했지만, 곧이어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자 소프라노 혹은 메조)를 앞세운 가수의 기교와 과도한 장식음으로 음악과 극의 균형은 깨졌다. 그 대표적인 예인 바로크 시절의 이탈리아 오페라, ‘opera seria’(진지한 오페라)는 19세기 벨칸토 오페라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 두 양식은 모두 극의 흐름과 내용보다 가수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고, 멋진 노래 실력을 갖춘 가수를 디바(여신), 디보(남신)라고 부르며 숭배했다. 이와는 정 극단의 지점에서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일련의 ‘musik drama’(악극)를 통해 한 막을 박수 없이 하나의 호흡으로 늘어놓는 식으로 음악과 극의 이상적 결합을 시도했으나, 가수의 존재감과 노래의 자연스러운 감동을 반감시켰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페라의 노래 유형들 = 음악과 극을 결합하는 관건은 노래에 있다. 노래는 노랫말로 극의 사연을 전달해 주기 때문에, 노래 부르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연극 ‘햄릿’(1599~1601 셰익스피어 극작, 1609 초연)에서 여주인공 오필리아가 노래하는 이유는 그녀가 미쳤기 때문이고 광대의 노래는 세상살이에 대한 넋두리와 세상에 대한 관조다. 또한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는 주인공들을 줄곧 관찰하다가 주인공의 절박한 사연이 안타까워 노래를 부른다.
연극보다 음악극에서는 노래의 이유가 더 중요했다. 오페라는 노래를 극의 맥락에 더 어울리게 하는 방향으로 변모했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현란한 기교와 과장된 감정 표출에 치우쳤던 아리아를 인물의 성격과 극 상황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식으로 변화시켰다. 사건 전개의 수단으로 무시되던 레치타티보(말의 느낌을 닮은 단순한 노래)는 아리아만큼이나 중요한 감정 표현 수단으로 부상했다. 여럿이 부르는 중창과 군중이 부르는 합창,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중간 형태인 아리오소 등 다양한 노래 형태가 개발됨으로써 음악을 통해 극을 표현하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가령 일상적 대화는 레치타티보로 표현하고, 똑같은 대화라 하더라도 사랑 고백, 암중모색, 다툼처럼 감정 표현이 더 필요한 순간에는 아리오소를 사용했다. 여러 인물의 빠른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중창이, 극적 순간을 위해서는 합창이 나왔다. 이에 비해 한때 한 작품에 수십 곡씩 들어 있던 아리아는 현저히 숫자가 줄어들었다. 등장 인물이 간절하게 소망하는 순간이나 위기에서 벗어나리라 결의하는 순간, 혹은 사랑의 희열이나 고통스러운 질투와 같이 감정이 극단적으로 폭발하는 순간처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아리아가 사용됐다.
◇뮤지컬이 오페라와 다른 점 = 뮤지컬은 고급예술이던 오페라에 비해 태생적으로 대중오락물의 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비교적 부르기 쉬운 독창과 이중창을 주로 사용해왔다. 뮤지컬에서 독창은 음악적 기교보다 인물의 정서 상태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시됐고, 이중창의 경우에도 동시에 화음을 맞추어 부르기보다는 노래 선율을 나누어 부르는 간편한 방식이 선호됐다. 오페라에서 오랫동안 개발됐고 점차 중요성이 부각된 중창과 아리오소는 기술적 완성도와 정교함 때문에 최소화됐으며, 합창은 음악적 감동 자체보다는 연극적 재미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사용됐다.
노래와 관련해 뮤지컬이 오페라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등장 인물의 대화를 노래로 부르지 않고 연극 대사에 준하는 일상적인 말로 한다는 점이다. 말을 사용하지 않고 노래로만 극의 내용을 전달함은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무언의 불문율 같은, 고급예술의 전제조건이었다. 오페라 종주국이자 최고의 오페라 문화를 꽃피운 이탈리아는 말의 사용 없이 노래로만 부르는 오페라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다. 후발주자인 다른 유럽 국가들도 대부분 이탈리아의 모범을 따랐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소박한 오페라나 희극적 내용의 오페라의 경우에는 노래 장면의 앞뒤에 말로 된 대사 장면을 집어넣었지만, 정통 오페라가 아닌 값싼 공연이라는 조롱 섞인 시선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자크 오펜바흐(1819~1880)는 평생에 걸쳐 오페레타만 쓰던 끝에 죽기 직전 정격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의 작곡(1881년 사후 공연, 오페라 코미크 극장)으로 제대로 된 오페라를 쓰지 못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뮤지컬은 오페라와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걸었다. 말과 노래라는 이질적인 두 재료가 충돌할 수 있다는 오페라의 근본적 이슈는 뮤지컬에서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뮤지컬은 말이라는 자연스러운 표현수단과 노래라는 매력적인 표현수단을 뒤섞는, 쉽고도 유연한 절충의 방법을 택했다. 말과 노래의 하이브리드는 초기 뮤지컬인 쇼뮤지컬부터 1940년대 이후 유행한 북뮤지컬과 이후 뮤지컬 코미디들에서 시종일관 계속된 뮤지컬의 주요 전략이었다.
◇오페라를 닮은 뮤지컬 = 198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은 오페라처럼 시종일관 대사 없이 노래로만 부르는 뮤지컬이다. 한때 ‘빅4 뮤지컬’이라는 브랜드를 십분 활용해 뮤지컬의 흥행과 다국적 문화사업을 이끌었던 ‘캐츠’(1981), ‘레미제라블’(1985), ‘오페라의 유령’(1986), ‘미스사이공’(1989)은 송스루 뮤지컬이 얼마나 뮤지컬의 본질에서 벗어나 오페라의 환상과 영광을 먹고 자라났는지를 잘 보여준다. 뮤지컬의 전통적인 전략이자 뮤지컬의 본질이던 ‘노래와 대사 교대’의 관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감동적인 아리아와 이중창, 육중한 대합창, 그리고 스펙터클이 들어섰다.
오페라를 볼 기회가 별로 없던 현대 관객들은 옛 오페라를 닮은, 고급스러운 음악의 매력과 화려한 무대에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뮤지컬의 전통과 관습을 사랑하는 일부 사람들은 뮤지컬이 왜 오페라를 닮으려 하는지 못마땅해하기도 했다. 뮤지컬은 오페라보다 열등한 장르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매력을 지녔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접점에서 뮤지컬이 보이는 일련의 현상들은 예술의 퇴행과 발전의 양면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용어설명
벨칸토 오페라
19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행한 오페라로, 극보다는 음악의 아름다움에 치중했고 옛 바로크 오페라처럼 장식음을 통한 가수의 기교 과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무지크 드라마
리하르트 바그너가 주창했던 연극에 가까운 이상적 오페라. 노래 끝에 박수가 나오지 못하도록 노래들을 이어서 작곡한 ‘무한 선율’ 기법을 사용했고 음악, 연극뿐 아니라 회화, 무대, 조명 등 모든 파트가 동등하고 이상적인 방식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송스루 뮤지컬
오페라처럼, 대사 장면 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뮤지컬. 1980년대 이후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뮤지컬 어법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