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北 합의·불이행의 역사

- 1972년 7·4 공동성명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
북한, 이듬해 南北조절위 중단

-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
南, 주한미군 핵무기 철수시켜
北,‘쌍방 합의’ 악용 사찰거부

- 2000년 6·15 공동선언
사상 첫 南·北 정상회담 개최
‘우리민족끼리’ 등 5개항 합의

- 2007년 10·4 공동선언
한반도 종전선언 추진에 협력
6·15 공동선언 구현 등 8개항

- 2018년 4·27 판문점선언
北, 하노이 노딜 후 교류 끊고
개성 연락사무소 일방적 폭파
9·19 南北군사합의 전면 파기


지난 16일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2018년 남북 정상이 맺은 ‘4·27 판문점 선언’을 파기했지만 놀랄 일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 때부터 대내외의 주요 국면마다 한국과 접촉했지만 늘 그렇게 약속을 어겼다. 합의와 이행은 항상 별개였다. 북한은 매번 남북 간 합의를 깨면서도 불이행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고 새로운 합의를 요구했다. 합의서들은 모두 남북이 한반도 전체를 위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양측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기획작품의 성격이 강했다. 남북관계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까지 대화와 화해 무드를 타다가도 곧바로 전쟁위기로 치닫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① 7·4 남북공동성명

7·4 남북공동성명은 1972년 5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과 박성철 제2부수상의 서울 방문을 통해 의견을 교환한 후 같은 해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발표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이 분단 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한 사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대원칙으로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남북은 무력통일을 강조했지만 양측의 공동성명에 평화 원칙이 들어간 것은 당시만 해도 의미가 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은 10월 유신을 강행했고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해 ‘주석제’를 집어넣으며 남북 모두 정치적 용도로 이를 추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북한은 1년도 되지 않은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빌미로 7·4 공동성명에 따라 만들어진 협의기구인 남북조절위원회 중단을 선언했다.


② 동구권 붕괴…남북기본합의서

1989년 독일 통일에 이은 동구권 붕괴는 북한 내 정치적 위기감을 불러왔다. 1989년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에서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당시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경제위기의 초입에 들어섰고, 경제지원을 책임지던 소련으로부터의 지원도 끊길 상황이었다. 체제 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북한은 1990년 9월 제1차 고위급회담부터 적극적으로 나왔다. 이후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은 공동 합의한 기본문서를 작성했고,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정식으로 발효된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조로 이뤄졌는데, 서문에서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3대 원칙을 재확인했으며 상호체제 존중(1장 1조)과 군사당국자 간의 직통전화 설치(2장 13조), 자유로운 왕래·접촉 실현(3장 17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③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남북이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의 합의로 이뤄진 대표접촉에 따라 1991년 12월 31일 채택됐고, 1992년 2월 19일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발효된다. 내용은 크게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치·사용 금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핵 재처리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 등이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은 이미 핵 재처리 작업을 벌이며 수십 ㎏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상태였고, 북측의 거짓말은 1992년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신고 플루토늄 양과 실제 양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발각된다. 반면 한국은 해당 선언을 이유로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마저 철수시켰다. 한국은 북한 지역에 대한 사찰을 주장했지만, 북측은 사찰의 범위가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이란 문구를 이용해 사찰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다.


④ 미·북 간 ‘동상이몽’ 제네바 합의

북한이 플루토늄을 숨기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1992년 7월부터 미·북 간 신경전은 최고조에 달한다. 미국은 북한에 IAEA 사찰을 받으라고 압박한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특별사찰은 전례가 없던 행위라고 버텼다. 이에 미국은 1993년 3월 북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릿’을 재개했고, 북한은 곧바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맞섰다.

1993년 1월 새로 출범한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1993년 6월 뉴욕에서 미·북 간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시작했고 1994년 10월 양측은 핵사찰 허용과 경수로 제공을 약속한 기본합의문을 채택한다. 하지만 당시 북한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 핵 개발에 들어가려는 목적이 컸다. 미국 또한 북한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2001년 제네바 합의에서 금지하기로 약속한 흑연감속로를 가동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⑤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최고지도자가 1945년 분단 이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일대 사건이었다. 1985년 제5공화국이 남북정상회담을 처음 공식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때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을 판문점에서 갖는 등 회담이 가시화됐지만 이듬해 김일성 주석의 급서로 무산됐다. 평양에서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간 이어진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6·15 공동선언을 도출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동선언에서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간다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 균형적 발전과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신뢰를 도모한다 △4개 항의 합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후속 대화 규정을 통해 합의 내용의 조속한 이행을 약속한다 등 5개 항에 합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⑥ 노무현 정부의 10·4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 회담은 6·15에 이은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불린다. 그해 8월로 예정됐었으나 북한에서 일어난 수해로 인해 연기됐다. 노 대통령은 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평양∼개성고속도로를 통해 방북, 분단 이후 최초로 군사분계선(MDL)을 육로로 넘은 국가원수가 됐다. 남북 정상은 10·4 공동선언에서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한다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킨다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간다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간다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한다 등 8개 항에 합의했다.


⑦ 문재인 정부의 3차례 남북정상회담

문재인 정부 들어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두 세 차례 만났고 그중 두 차례 공동선언문이 도출됐다. 두 정상 간 첫 만남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정상회담으로, 당시 회담 결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4·27 판문점 선언)이 나왔다. 이 선언문에는 남북 적대행위의 전면 중지, MDL 일대 확성기 방송·전단 살포 등 중지,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인 평화지대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5월 26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비공개로 실무형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루 뒤인 27일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남북 정상은 당시 회담에서 4·27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 등을 재확인했다. 약 4개월 뒤인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둘째 날인 19일 남북 정상은 평양 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한 뒤 그 내용을 발표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 내용을 담은 9·19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 어떤 수단·방법으로도 상대 관할구역을 침입·공격하지 않을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⑧ 2년 만에 깨진 9·19 남북군사합의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 17일 ‘대변인 발표’를 통해 1호 전투근무체계를 선언하고 △금강산관광지구·개성공단에 부대 전개 △DMZ에서 철수한 감시초소(GP) 복원 △접경지 포병부대 증강 및 군사훈련 재개 △대남전단(삐라) 살포 등 네 가지 대남 군사 조치를 발표했다. 사실상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선언이다. 아직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이들 조치가 조만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3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파괴를 예고한 지 사흘 만인 16일 실제로 사무소를 폭파했다. 우리 군은 최근 북한군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비어 있던 DMZ 북측 지역 내 GP 여러 곳에 병력을 투입하는 정황을 포착, 접경지 훈련 재개 준비 움직임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지난 21일 통일부가 대남전단 살포 계획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데 대해 “계획을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맞서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위협하고 있다.


⑨ 북, ‘하노이 노딜’ 이후 교류 끊어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정부의 각종 대화 제의를 무시했다. 정상회담 결렬 4개월 후인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 간 회동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을 통해 당시 미국 측은 수차례 문 대통령의 동행을 거절했으며, 북한 또한 같은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은 당시 남·북·미 정상회담을 보도하며 문 대통령에 대한 비중을 줄이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쌀 5만 t 지원을 진행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대북 개별관광을 추진했다. 하지만 북한은 쌀 지원을 거부하고 개별관광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데 이어 올해 대북전단 문제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했다.


⑩ 이후 이어질 북한의 합의 파기

북한이 최근 내놓은 군사 분야 4대 지침은 남북이 2018년 맺은 합의를 위반할 소지가 크다. 이 가운데 DMZ 내 병력 배치와 서해 포병부대의 훈련은 9·19 군사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는 것이다. 군사합의는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방침 아래 휴전선을 기준으로 육상과 해상 일정 거리 내에서의 포사격 훈련을 금하고 있다. 또 양측은 GP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상호 1㎞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GP들을 완전히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전단 살포를 위해 군사적 안전대책을 세운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해상에서 군사적 안전대책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철순·김영주·김유진 기자
정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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