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52.1% ‘사치성 소비’에 긍정적… 그중 52.6%는 “자기만족이 중요해서” 응답
현재의 경제생활·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자격지심 더해져 ‘자기보상소비’… 과소비 문화 확산에 위화감 조성 등 부작용도

돈 없지만 명품·호텔 소비… 2030세대의 ‘플렉스’ 문화


입사 2년 차로 중견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박혜경(27) 씨는 얼마 전 생일을 맞아 서울 시내의 유명 호텔을 예약하고 친한 친구 3명을 불러 ‘화려한’ 생일 파티를 했다. 생일 파티는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체크아웃 때까지 이어졌다. 룸서비스로 음식들을 주문하고, 값비싼 와인도 몇 병을 주문해 마셨다. 비용이 수백만 원이 나왔지만, 박 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박 씨는 “물론, 적은 돈이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쯤은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충분히 소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친구들과도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호화로운’ 생일파티 현장을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 ‘#생일파티, 플렉스 해버렸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했다. 이후 많은 사람이 ‘부럽다’는 댓글을 달았다.

지난해부터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이른바 ‘플렉스(Flex)’ 문화는 소위 ‘MZ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MZ세대는 1980∼1994년생을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4년생을 지칭하는 ‘Z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상당히 넓은 연령대를 포괄하지만, 주로 20∼30대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이들은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면서도 차별화되는 이색적인 경험을 선호하는 특징을 가진다.


◇‘2030세대’ 플렉스 문화 확산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는 말은 최근 MZ세대의 대표적인 유행어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의 사치와 소비를 가감 없이 친구나 동료들에게 자랑한다. 플렉스라는 단어 자체가 ‘과시하다’ ‘자랑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사치성 소비를 알리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일종의 ‘자기 과시’인 셈이다.

실제, 데이터로도 이런 젊은층의 플렉스 심리는 잘 나타난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사람인’이 20∼30대 30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52.1%가 플렉스 소비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인 이유는 ‘자기만족이 중요해서’라는 답변이 52.6%(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즐기는 것도 다 때가 있어서’(43.2%) ‘스트레스 해소에 좋을 것 같아서’(34.8%)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32.2%) ‘삶에 자극이 되어서’(22.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멋있어 보여서’라는 답변도 7.3%를 차지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젊은층의 플렉스 소비는 자기만족과 즐기는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플렉스로 구매하고 싶은 것’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플렉스 소비를 통해 가장 많이 구매하고 싶은 품목으로 응답자들은 ‘고가의 명품’(40.8%, 복수응답)을 꼽았다. 세계여행(36.7%)과 음식(27.0%), 자동차(24.6%) 등 주로 사치성 품목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비용도 500만 원 미만이 66.0%를 차지했다. 젊은층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다. 500만∼1000만 원을 쓸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17.6%를 기록했다.

젊은층의 플렉스 소비는 명품 브랜드 판매에서도 잘 나타난다. 롯데멤버스의 리서치플랫폼인 ‘라임’이 회원 3950만 명의 거래내역을 바탕으로 지난 2017년 2분기부터 2019년 2분기까지 엘포인트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대의 명품 브랜드 구매 건수가 2017년 2분기 6000건에서 2019년 2분기에는 4만400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명품 브랜드 구매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5.4%에서 11.8%로 껑충 뛰었다.


◇젊은층이 ‘플렉스 문화’에 심취하는 이유 = 젊은이들이 왜 ‘플렉스’에 심취하는 것일까. 경기 침체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취업난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들의 ‘탈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돈을 아끼고 절약해서 집을 산다든지, 이런 목표 성취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져, 참고 절약하면서 주택 등 중요한 것들을 먼저 마련하고 그다음 단계 수준의 물품을 소비하는 행태가 과거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돼 버렸다”며 “반면, 자신이 갖고 싶은 걸 갖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한데, 그런 욕구가 2030세대에서 플렉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집이 없어도 좋은 차를 살 수 있고, 명품 시계나 가방 정도는 자기 보상 심리를 통해 구매로 이어진다”며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받고, 들인 돈에 비해 효과가 큰 소비로 인해 자신의 가치관이 확실히 생기고 그에 따른 소비 포트폴리오를 만든 뒤 자기보상 심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내적 불안 심리를 표출하는 행위라는 분석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플렉스가 결국은 ‘자랑한다’는 것인데, 내적 불안감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현재 경제생활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소위 ‘자격지심(自激之心)’이 더해져 그것을 감추려는 방법으로 플렉스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취직도 잘 안 되고, 취업이 되더라도 안정성이 과거보다 떨어져 내적 공허함이나 불안감을 플렉스를 통해 잠시 잊는 ‘보상 소비’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들도 이런 소비 행위가 ‘허세’라는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고, 일부 젊은이들은 플렉스 활동을 통해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들보다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플렉스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의 ‘빈곤’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부 격차 확대 등으로 사회·경제적 위화감이 커지면서 소위 ‘금수저’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보편화 돼 젊은이들 스스로가 빈곤층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가 사회적 성공으로 부를 얻은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찬양, 나아가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해 플렉스를 한다는 해석이다.


◇위화감 조성 등 부작용 우려도 = 플렉스 문화가 일종의 과소비 문화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부작용도 없지 않다. 특히, 미래의 경제활동 주체가 될 젊은층들의 지나친 과소비 심리는 건전한 소비활동과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일부 유튜버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구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자극적인 플렉스 소비를 직접 실행하면서 ‘대리 만족’을 보여주는 것이다. 3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명 유튜버 ‘허팝’은 지난해 “대형마트를 털러 가겠다”며 마트에서 무려 5600만 원이 넘는 물품을 일시에 구매했다. 물론, 대형마트 측과 사전협의가 됐고, 구입 물품을 불우이웃에게 기부했다고 하지만 그 씀씀이에 보는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교복 전문회사인 ‘스마트학생복’이 중·고등학생 3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명품 소비실태’ 결과, ‘명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한 10대 학생이 56.4%로 절반을 넘었다. 명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학생도 76.0%에 달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큰돈을 버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래퍼 등 젊은층이 나오면서 이들의 거리낌 없는 소비활동과 함께, 이들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면서 일종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산업계에서는 소비 성향이 강한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건전한 소비와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꼭 바람직한 현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임대환·김온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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