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플렉스 유행을 촉발한 래퍼 염따(위)와 ‘개그맨 플렉스’의 조진세-김원훈 콤비.
국내 플렉스 유행을 촉발한 래퍼 염따(위)와 ‘개그맨 플렉스’의 조진세-김원훈 콤비.
‘플렉스’ 문화의 유래

‘플렉스(Flex)’ 문화는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자신이 가진 부(富)를 자랑하고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1992년 흑인 래퍼이자 배우인 아이스 큐브가 ‘다운 포 왓에버(Down For Whatever)’라는 곡에서 처음으로 가사 중에 플렉스라는 말을 썼고, 유명 래퍼 투팍(2PAC), 닥터 드레 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당시 이들의 플렉스는 ‘갱스터 래퍼’로 활동하면서 썼다는 점에서 지금의 플렉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갱스터 랩이 폭력성이나 여성의 성적 비하 경향이 짙어 플렉스에도 그런 분위기가 깃들어있다면 지금은 패러디나 개그의 소재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초부터 플렉스가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래퍼 염따가 한 방송에 출연해 명품을 자랑하며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한 뒤로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때의 플렉스는 ‘과소비하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염따는 종종 자신의 SNS에 재미있는 플렉스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월엔 ‘해피 마이 버스데이(Happy my birthday)’라고 자신의 생일을 알리면서 스스로 구입한 선물을 공개했는데 그게 슈퍼카였다. 그는 “성공한 남자에게 어울리는 생일 선물. 별거 아냐. 나는 이만 파티를 즐기러 간다”라고 ‘쿨하게’ 플렉스 했다. 이날 염따가 보여준 파란색의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는 6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유튜브 구독자는 40만 명에 달한다.

플렉스는 개그 소재로도 자주 패러디됐다. 아쉽게 폐지된 KBS ‘개그콘서트’의 ‘개그맨 플렉스’ 코너는 잠시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큰 관심을 끌었다.

KBS 개그맨 공채 30기 김원훈과 31기 조진세 콤비는 우스꽝스러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플렉스를 소재로 코미디를 선보였다. 소소한 일상에서 능청스럽게 과소비하는 모습을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에 담아 웃음을 자아냈다. 예를 들어, 사과 껍질을 유난히 두껍게 깎아 먹는다든지, 유명 프랜차이즈 떡볶이를 배달시켜서 먹지는 않고 그 안에 든 커터칼만 쓴다든지, 스타에게 사인받은 테니스공을 겨우 의자 받침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굳이 금액으로 따진다면 별것 아닌 수준이지만 소유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플렉스 하는 모습에서 폭소가 터진다. 경기 침체와 취업 실패로 쪼그라든 청년세대의 소심한 플렉스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개그콘서트’는 폐지됐지만 자신들만의 유튜브 ‘우낌표’ 등을 통해 플렉스 코미디를 이어가고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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