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경제부 차장

2017년 6월 23일, 김현미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아파트는 돈이 아닌 집이다’라며 부동산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취임식도 다른 부처 장관들과 달랐다. 본인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으로 과열 진원지인 서울 강남지역의 다주택자 주택 구입 증가 폭을 직접 수치로 확인하며 ‘서울의 시장 과열이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하는 퍼포먼스도 보였다. 신임 장관의 ‘전의(戰意)’를 취임 일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김 장관이 이끄는 국토부의 전쟁 결과가 어떠한지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김 장관 취임 당일 밝힌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간 서울 아파트 중위 값은 3억1400만 원(52%)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1500만 원 하락(-3%)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1억3400만 원(29%) 올랐다. 전쟁을 선포한 장수의 성적표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규제 강도와 횟수로 볼 때 전쟁은 전면전 수준이었다. 김 장관의 국토부는 그간 총 22회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과 주택담보대출비율 대폭 축소, 투기과열지역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을 담은 2017년 ‘8·2 대책’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종합부동산세 대폭 인상을 골자로 한 2018년 ‘9·13 대책’, 2019년 8월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선포했고, 같은 해 12월 16일(12·16 대책)에 또다시 대출규제 강화와 보유세 부담 확대를 내용으로 한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인천을 비롯해 수원·안양·화성까지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정부는 지난 17일 경기도 대부분은 물론 충북 청주까지 규제지역으로 묶고, 전세대출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는 등의 초강력 대책을 또다시 꺼내 들며 전쟁을 이어갈 의지를 드러냈다. 전시 중 발생하는 크고 작은 22차례 전투에서 전패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6·17 대책도 모든 정책 수단을 소진한 것은 아니다”(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고 호언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작전 실패가 아니라 전략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시인할 법한데, 절대 시인하지 않는다. 정부 말대로 투기세력은 강력한 유동성을 무기로 전국을 무대로 게릴라전을 펴고 있다. 이들을 잡기 위해선 기존 전략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투기세력은 시장경제에서 항상 존재하기 마련인데, 현 정부는 이들이 아닌 시장과 싸우는 모양새”라며 “전투를 벌여야 할 대상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적(主敵) 설정부터 잘못됐다. 오히려 정부의 잇따른 규제는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앗았다. 전쟁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당장 내 집 한 채가 급한 일반 국민이다. 정부의 어설픈 전쟁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정부는 투기세력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이 투기세력에는 직장·주거 근접 여건이 좋은 집을 찾는 무주택 서민들이 포함됐다. 공급 부족으로 이들이 원하는 곳에 집이 없는 게 근본 원인이다.

그런 곳에 집을 더 지어 수요를 분산시키는 게 집값 안정을 위한 대안 전략이다. 하지만 이는 현 정부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김 장관의 정부’는 집을 원하는 국민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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