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70돌이 말하는 것
6·25는 스탈린의 지지와 北의 근친증오가 결합한 전쟁폭력… 온정주의 文 대북정책 오류로 판명
北, 반국가단체이자 평화통일 대상…‘현실의 敵’ 토대로 비핵 이끌어 ‘미래 동반자’로 나아가야
◇‘북한 = 적’ 대북관 형성과 변천
지금의 세계는 6·25전쟁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전쟁은 ‘자유 대 공산’이라는 전 세계적인 냉전 질서를 만든 전쟁이었다. 권헌익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말한 대로 미국의 군사제국화, 중국의 대국주의화가 6·25전쟁 과정에서 나왔다. 미·중 갈등의 기원도 1950년 말 중공군 참전에서 비롯됐다. 소련 지도자인 스탈린의 지지 약속에 의지한 북한 김일성의 오판과 ‘피의 위계질서’라는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근친증오는 냉전질서 구축을 겨냥한 ‘세계시민전쟁’과 결합해 전쟁의 참혹성을 더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북한은 적’이라는 의식이 형성됐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이어오며 오직 사상적으로 의심받지 않는 반공 시민만이 국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온 사회에 팽배했던 시절도 있었다.
‘북한 = (주)적’이란 용어가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한 건 김영삼 정권(1993∼1998년) 때였다. 1995년 백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고 기록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선 이후 6·25에 대한 관점과 대북관은 반전됐다. 김대중 정권(1998∼2003년) 때인 1998·1999·2000년 국방백서는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이라면서 주적과 군사위협이란 표현을 함께 사용했지만, 노무현 정권(2003∼2008년) 들어 주적 용어는 완전히 삭제됐다. 2004년 백서에는 ‘직접적 군사 위협’이란 말만 남았고, 2006년에는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이명박 정권(2008∼2013년) 들어 2010년 국방백서에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며 ‘적’이라는 말을 다시 등장시켰고, 이는 박근혜 정권(2013∼2017년) 때인 2014·2016년 백서까지 이어졌다.
◇文의 6·25관과 대북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2018년 국방백서에서 ‘적’이란 용어는 다시 사라졌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6·25가 북의 남침이라는 사실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4일 6·25 유공자들 초청 오찬에서 “6·25는 비통한 역사지만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6·25 70주년인 25일엔 공식 기념식에 직접 참석한다. 50주년(2000년) 때엔 김대중 대통령이, 60주년(2010년) 때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대북관에서 ‘북 = 적’이라는 관점이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지난 2017년 4월 19일 대선 후보들의 KBS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 주적론’ 의제가 나오자 즉답을 피했다. 유승민 후보가 “북한이 우리 주적이냐”고 묻자 문 후보는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사람”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의 책무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북을 적이 아닌 동반자로 대하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후로도 지금까지 북한 주적론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헌법과 북한의 이중 지위
헌법은 북에 대한 이중적 지위를 말하고 있다. 헌법 제3조가 북에 대해 ‘반국가단체’라는 법적 지위를 제시한다면 제4조는 ‘평화통일의 대상’이라는 근거를 제기한다. 제66조 2항과 3항의 대통령의 책무 관련 규정도 비슷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나 결정은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인 북쪽을 점령 중인 반국가단체이면서도 평화통일의 대상이라는 지위를 동시에 갖는 것으로 돼 있다.
반국가단체와 평화통일 대상이라는 두 개의 지위는 모순된다. 국가와 국가 간 통일은 있어도 국가와 반국가단체 간 통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유엔 가입 등을 통해 사실상의 국가로 대접받고,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2년 체결된 7·4 남북공동성명 이후론 북한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한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영토조항(헌법 제3조, 제66조 2항)은 역사성의 표현이고, 통일조항(헌법 제4조, 제66조 3항)은 가치 지향적 개념”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이런 관점과 태도를 헌법학자들은 ‘이중적 지위설’이라 부른다.
반국가단체로 무력 도발을 일삼는 북한은 적이지만, 평화통일의 대상인 북한은 동반자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북의 도발이 현재의 실재하는 사건이라면 평화통일은 미래지향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에 대한 이중적 지위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함축하고 있다.
◇6·25가 말하는 것
6·25와 이후 70년의 남북관계사는 북한이 남한을 제압하려고 시도한 두 번의 선택 모두 남북경쟁에서 결정적인 패착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말해 준다. 김대중도서관장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이 70년 전에는 남침으로 한국의 국제연대와 한·미 동맹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며 패배와 고립의 길에 들어서더니, 오늘날에는 핵 개발로 또다시 국제제재와 고난을 자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적의 가득한 도발 행보에서 한국에 대한 우의(友誼)를 찾아내긴 어렵다. 핵을 보유한 북한이 존재하는 한, 주적론의 유보는 있을 수 없다. 박 교수는 “급진민족주의와 민족통일노선을 대표하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세력인 86세대가 활동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간 대화가 중단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정주의에만 입각한 통일운동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집권 후 3년 이상 핵을 가진 북한과의 동반자 관계에 집요하리만큼 매달린 문 정권의 대북 정책이 사상적·실천적 오류로 판명됐다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6·25 70주년이 오늘날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북이 핵을 내려놓는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북한이 주권의 문제를 핵과 동일시한 것이 결정적 오류였다”고 했고, 박 교수는 “핵 보유·세습독재·인권 유린을 지속하는 상태에서 온정주의 대북 정책과 통일운동은 비이성적”이라고 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6·25는 북한에 대해 ‘적이라는 현실의 토대 위에 동반자라는 미래 지향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진정한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남과 북은 적대적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의 이행이 가능하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적과 동반자 : 북의 남침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된 6·25전쟁의 경험은 북에 대한 대한민국의 오랜 적의(敵意)와 함께 ‘북한 = 적’이라는 대북관을 형성하게 함. 하지만 전후 세대가 사회 주류로 등장하고 진보세력이 집권하면서 적과 동반자라는 이중성이 강조됨.
文의 대북관 : 문재인 대통령이 6·25가 북의 남침이라는 사실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임. 하지만 그의 대북관에서 ‘북한 = 적’이라는 관점이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함. 그는 북의 이중적 지위에서 적을 뺀 동반자로서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임.
6·25가 말하는 것 : 1950년 침략전쟁으로 패배의 길을 걷게 된 북은 오늘날에는 핵 무장으로 국제제재를 자초함.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이 핵을 내려놓는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하며, 그럴 때 남북은 적대적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의 이행이 가능.
■ 용어 설명
이중적 지위 : 북한의 ‘이중적 지위’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993년 7월 “북한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는 반국가단체의 성격을 갖고 있음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결정함.
근친증오 : ‘근친증오’란 핏줄이나 이웃에 대한 증오를 말함. 근린증오와도 같이 쓰임. 6·25는 김일성의 근친증오적 야욕과 스탈린의 국제 냉전질서 헤게모니 장악 구상이 맞아떨어지면서 벌어진 전쟁의 성격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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