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곤(1933∼2000)

아버지와 작별한 지 어느새 20년이 흘렀습니다. 퍽퍽한 일상이 비집고 들어와 아버지와의 기억이 점점 무뎌져 가는 요즘, 속절없이 무심하게 떠밀려 간 시간이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별의 그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위중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넋이 나간 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의 소낙비는 차오르는 슬픔을 아는지 세차게 내렸습니다. 잊고 지냈던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을 맞추며 가슴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의 빛바램에도 아버지 모교이자 사택에서 지낸 초등학교 시절은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입니다. 아버지는 교감 선생님으로, 저는 5학년 전학생으로 학교와 집이 한 공간인 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낯선 환경이 처음엔 두렵고 부담스러웠지만, 그 시절 느끼고 생각했던 값진 경험들은 삶의 좌표를 세우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됐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운동장 교단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던 여름날, 함박눈으로 설밭이 펼쳐진 운동장에 ‘심쿵’한 첫 발자국을 새기던 겨울날, 마당과 뒤뜰의 닭·돼지·고양이·개, 텃밭의 옥수수·고구마·감자, 앞마당의 대추나무·은행나무 등 목가적인 사계절 풍경이 가득했습니다. 라디오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독창을 할 때 교실 뒤쪽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아버지를 보고 용기가 솟아오르던 기억도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릅니다. 싱긋이 웃으시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시기가 아버지가 주신 진주 같은 고귀한 추억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는 저를 자랑스러워하셨고, 전 그게 부담스러워 애써 외면하며 밀쳐냈던 기억들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랑인 것을, 그때는 아버지의 애틋한 정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으로 처음 부임하실 때 가보지 못한 것, 좋아하시는 술 제대로 못 사드린 것, 함께 해외여행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 등 후회스럽고 아쉬운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짓누릅니다.

40여 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받은 훈장을 목에 걸며 좋아하시던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났던 기억은 잊히질 않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맘껏 누리지도 못한 아버지의 시간 앞에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꿈속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던 황망한 일이기에 더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한동안은 무기력과 슬픔의 무게로 헤매고 심상했습니다.

호탕한 웃음과 절대음감으로 세상을 노래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울립니다. 애연가셨던 아버지 때문에 안방 천장이 노랗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좌절과 번민, 슬픔이 있었을 텐데. 감추며 사셔야 했던 깊은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습니다. 자식들에게 너그러우셨고, 언제나 기대서 쉴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 같은 포근한 쉼터였습니다. 술과 담배를 즐겨 하셨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한 시대를 멋지게 사셨습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DNA를 손주들에게도 물려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온돌 같은 아버지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들 김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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