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를 죽여야 할까. 죽이지 않고 이길 수는 없을까.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이 힘든 걸 왜 계속할까. 우리는 늘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기다리는 것들은 결국은 나타날까.” 미국 출신의 대문호(大文豪)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한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를 소리꾼 이자람(41)이 직접 각색·작창해 자신의 소리로 지난해 초연한 동명의 판소리 한 대목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어부 산티아고가 오랜 기간 빈손이다가 마침내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사투 끝에 잡았으나, 결국 상어 떼에 다 뜯어먹혀 앙상한 뼈만 남게 된 과정의 질문을 이자람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 치환했다. 관객도 삶에서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분투하고 있는지를 자문(自問)하게 하는 것이어서 여운이 깊고 길게 남는다.
다섯 살이던 1984년 예명 예솔이로 방송 활동을 시작하며 동요 음반을 내놓았던 그는 국립국악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1999년 판소리 ‘춘향가’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그는 창극·연극·뮤지컬 등의 작가·음악감독·배우이기도 하다. 2004년에 결성한 4인조 포크록 그룹인 아마도이자람밴드에선 작사·작곡·보컬·기타연주를 맡아 ‘슬픈 노래’ ‘비가 축축’ ‘우아하게’ ‘행방불명’ ‘선택’ 등의 인기 곡을 발표해왔다. ‘한계가 없는 아티스트’로 불린다.
그는 독일의 세계적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四川)의 선인(善人)’과 ‘억척 어멈과 그의 자식들’도 각각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로 각색·작창해, 2008년과 2011년 초연부터 국내외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널리 알려진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발표한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Bon Voyage, Mr. President!)’은 그에 의해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로 2016년 초연돼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루마니아·일본 등지의 공연도 극찬을 받은 ‘이방인의 노래’가 지난 24일부터 4년 만에 다시 국내 무대에 올랐다.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더줌아트센터에서 오는 7월 5일까지 공연된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런 예술인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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